구례선·리동휘·손정도 3인의 혁명적 삶과 얽힌 역사

‘여명과 혁명, 그리고 운명 (부제: 구례선과 리동휘, 그리고 손정도)’ 책표지.정진호 한동대 교수 장편 소설.
근현대 독립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그러나 역사의 뒤안길에 감추어져 있던 세 사람의 주인공의 삶과 투쟁과 그 영향력을 지금 이 시대에 재조명하기 위해 쓴 특별한 역사 소설이 나왔다. 바로 정진호 한동대 통일한국센터 교수가 지은 <여명과 혁명, 그리고 운명 (부제: 구례선과 리동휘, 그리고 손정도>이다. 이 소설은 근현대사 150년을 통전적 시각, 즉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부분에 그치지 않고 인과와 배경을 넘어 역사 흐름 속에서 나타난 그림 전체를 보는 안목으로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저자는 남북 분단에 앞서 보수와 진보, 태극기와 촛불, 남·남 갈등과 분열의 이유를 자문한다. 그 뿌리를 캐내려고 토론토 대학 동아시아 도서관에서 2년간 파묻혀 살며 수백권의 근현대사 자료를 찾았다고 책을 쓰게된 동기를 밝혔다.

그는 우리가 임시 정부의 대통령 이승만 박사와 김구 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알고 있지만, 그 시절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임시정부 국무총리 리동휘와 국무원 비서장 김립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또 3.1운동 시 남쪽에서 활약하며 제암리 사건을 세계에 알린 캐나다 선교사 스코필드 박사는 알아도 함경도 및 북간도와 연해주에서 활약하며 룡정에 선교부와 은진중학교를 세워 문익환, 윤동주 등 수많은 인재들을 배양했던 그리어슨(구례선) 선교사는 모른다고 꼬집었다. 특히 남쪽 기호인과 경상도 사람들이 주로 올라가서 만든 신흥무관학교는 알아도 리동휘와 김립 등이 북간도에 세운 라자구사관학교에 대해서는 무지하다하고도 했다. 손정도(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초대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손정도 목사는 임시정부에서 이승만 박사를 대통령으로 세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지만, 김일성 주석의 은인으로서 남북한에서 유일하게 존경받는 목사이기도 하다. 그 만큼 우리는 남쪽의 역사에 비해 북쪽의 력사에는 무지하다. 역사가 남-북 이념 갈등과 분단 상황으로 갈라지고 왜곡돼 왔다는 것이다. 아직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세 사람은 한국 근현대에서 민족의 독립과 통합에 대한 책임감으로 헌신적인 삶을 보냈지만, 개인의 명예와 출세보다 공동체와 민족을 우선시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저자는 이들의 삶을 관통했던 한국 근대사를 살펴보면 외세 침략에 반응해 우리 민족 내부에서 일어난 사분오열(四分五裂)의 역사였다고 단언했다. 특히 분열의 근대사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변수는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복합적 전래 과정’이라고 남다른 통찰력으로 냉철하게 진단했다. 다른 종교에 비해 유독 기독교는 근대 교육과 서구화 과정에서 가장 큰 기여를 했지만, 한국사회의 분열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에도 엄청난 부정적 기능을 했기에 특별히 다루지 않을 수 없다고 술회했다. 그 뿌리가 미국의 영향을 받은 평안도와 캐나다의 영향을 받은 함경도 라인으로 이어져서 해방 후 월남한 기독교인들에 의해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뿌리를 이루게 되었다고 단언한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역시 일제시대에 일본 대농과 친일 지주들에게 수탈과 억압을 받던 민중의 해방을 위해 기여한 바가 있지만, 민족사에 있어 전쟁과 분단에 이르는 이념 갈등을 심화시킨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조선조 500년간 기득권 세력이었던 기호지방 사대부 세력과 항상 멸시와 천대를 받았던 북쪽의 서북인들 사이의 지역갈등에, 미국 선교사들의 관할 구역이었던 서도(평안도/황해도)지역과 캐나다 선교사의 영향을 받았던 북도(함경도/북간도/연해주)가 다시 동서로 갈라지면서 새로운 지역구도가 형성된다. 그로 인해 손정도, 조만식, 한경직 등 숭실중학을 나온 평안도 출신과 기호파가 연합해 친미 반공주의 범보수진영을 형성한 반면, 김재준, 문익환, 강원룡 등 북간도 룡정의 은진중학 출신은 남쪽 사회에 내려와서 통일운동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진보진영을 형성하게 됐다. 이와 같이, 우익 보수에 의해 형성된 반쪽의 독립운동사 밖에 몰랐던 우리에게 기독교와 사회주의 공산주의 진영이 어떻게 혼합돼 큰 영향력을 미쳤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보수 진보의 좌우 진영의 양극화 현상에 이어지고 있는지까지 이 책은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이 책은 러일전쟁에 의한 망국과 1차 대전 전후로 일어난 미국과 러시아의 이념 전쟁 속에서 갈라진 독립운동 세력의 갈등과 이어지는 치열한 독립전쟁사, 그 속에서 생의 모든 것을 걸고 희생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민족을 배반했던 밀정들의 이야기, 그러나 도도하게 흘러가는 운명적 물줄기를 타고 민족의 하나됨과 독립 통일을 염원했던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궤적을 따라간다. 독립운동의 제단에 목숨을 바친 김알렉산드라와 안중근과 강우규 등의 피흘림과 김동한, 김하석, 엄인섭 등 독립운동가의 허울을 뒤집어 쓰고 민족을 배신한 밀정들의 이야기까지 치열한 드라마가 박진감 넘치게 이어진다. 마지막 자유시 참변의 맺힌 한을 풀어내는 리동휘와 홍범도의 화해 장면이 감동적 클라이맥스로 전개된다. 한 시대를 민족을 위해 몸 바쳤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눈물과 희생이 헛되지 않고 오늘날 우리가 염원하는 남과 북이 하나 되는 화해 통일의 역사를 써내려 가기 위한 희망의 메시지가 책을 덮는 독자들에게 가슴찡한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반병률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추천서평을 통해 “주인공으로 세 분을 선택한 그의 역사적 안목이 심상치 않다. 이분들에 대한 개별적인 호감 이상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꿰뚫고 있는 저자의 깊은 통찰력과 문제의식을 짐작할 수 있다”며 “그의 남다른 삶의 역정과 민족에 대한 그의 실천적 고민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그의 지성적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고 극찬했다. 또 추천사를 쓴 송영길 국회의원 역시 “소설을 읽는 동안 스케일의 광대함과 디테일의 세밀함에 놀랐다. 웅장한 또 한편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보는 것 같았다”고 쓰고 있다.

저자인 정진호 교수의 이력은 독특하다. 정 교수는 소설가도, 역사학자도 아닌 공학자이다. 그러나 이미 여러 권의 저서들을 출간한 바 있어 상당한 독자층이 형성돼 있는 문필가로서 정평이 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여의도고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에서 박사가 됐다. 이후 진리를 찾아 방황하다가 MIT 박사후 연구원 시절, 남과 북 디아스포라 3자가 하나되는 삼국통일의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1994년, 세월을 뛰어넘는 결단을 하고 독립운동가의 삶을 선택, 북간도로 갔다. 연변과기대에서 조선족을 가르치다가, 2003년 평양 땅을 밟았다. 평양과기대 설립부총장으로 세계를 누비며 민족의 하나됨의 꿈을 설파했다. 2017년 여름 평양서 나와 토론토대학 방문교수 중, 150년 근현대사에 나타난 분열의 독립운동사와 통일문제에 천착하게 됐다 한다. 지금은 한동대학교에서 통일 일꾼을 키우며 경상북도청과 함께 남북경협 포럼을 시작했다. 유라시아 원이스트씨 포럼(한동해 포럼)을 만들어 3자 연대의 꿈을 이어가며 현재 경북일보에 코로나19 이후의 사회적 현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혜안이 담긴 특별 기고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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