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약 50년 전 1970년도 애송이 교사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에는 컴퓨터도 없었고 계산기도 없었을 때라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을 치고 성적을 낼 때는 등사판으로 시험지를 밀고, 손으로 채점하고, 주판으로 통계를 내고, 먹물에 철필로 성적표를 작성하던 시절이다. 중간고사 후 성적통지표를 나누어주었는데 한 학생이 찾아와 성적표 수정을 요구했다. 마침 내가 자리 없을 때라 교감 선생님에게 간 것이다. 성적을 옮겨적으면서 24번 학생의 성적이 25번 학생과 바꾸어진 것이다.

나의 잘못을 발견하고 학생에게 사과하고 통지표를 수정하여 주었다. 교감 선생님에게 잘못을 사죄했더니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데 한 칸 잘못 적을 수도 있지요. 앞으로 더 주의를 기울이세요.”라고 말씀하셨다. 부끄러웠다. 한편으로 고맙기도 했다, 그 후로 업무에 더 세심해졌으며, 학생이나 동료들의 잘못을 보는 눈을 달리하게 되었다. 좀 미운 사람이 있어도 미워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말 잘하는 사람보다 잘 말하는 사람, 무안을 주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호감을 가지고 있으면 하는 일도 좋게 보아 지고 잘못이 단순 실수로 보이게 된다. 미운 사람의 일은 잘해도 평가에 인색해진다. 무슨 다른 의도가 있는지도 살펴진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지금 세상에 뉴스거리를 만들어 내는 똑똑한 사람들이 옳고 그름 차원이 아니라, 내 편 네 편으로 평가를 달리하는 눈을 가진 것 같다. 내 편이 아니면 잘해도 밉고, 내편이면 잘못해도 좋단다. 지도자가 아니라 소인배의 짓이다. 이런 지도자가 많으면 세상이 맑아질 수 없고, 아름다워질 수도 없다.

‘밉다’라는 말이 있다.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고 싫다는 뜻이다. ‘밉상이다’라는 말도 있다. 볼품없이 생겨서 미운 얼굴이나 사람을 가리킨다. 반어법으로 잘 생긴 사람을 밉상이라 해서 그런지 그렇게 나쁘게는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얄밉다’는 말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매우 약고 영리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다.’의 뜻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너무 약아 보인다거나 지나치게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을 보고 얄밉다고 한다. 힘든 일이나 이익이 없는 일에는 쏙쏙 빠져나가고 자신의 낯을 내거나 이익이 생기는 일에는 어느새 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면 얄미워진다. 미운 사람이나 밉상인 사람보다 인격적으로 비하(卑下)되는 사람이다. ‘얄미운 사람’이란 대중가요도 있다. 언제든 더 좋은 사람이 있으면 버리고 떠나는 사람을 말하는 것 같다. “준 것 없이 미운 사람”이 있다고 한다. 하는 짓이 나에게 손해를 끼친 일도 없고, 그에게 해 준 것도 없는데 공연히 미워진다는 말이다. ‘밉살스럽다’라는 말도 있다. 남에게 몹시 미움을 받을 만한 데가 있다는 뜻이다. 경상도 지방에서 어쩌다 들을 수 있는 말에 ‘매깔시럽다.’는 속된 방언이 있다. 정말 듣기 싫은 말이다. 미워서, 얄미워서, 참기 어려울 정도라는 말이다. 상종할 수 없을 정도로 밉다는 뜻이다. 정치인들을 두고 이런 말을 쓰는 경우를 보게 되어 안타깝다.

말은 사람의 인성에 영향을 미친다. 아름다운 말은 사회 분위기를 아름답게 만들어 낸다. 부드럽고 고운 말을 쓰면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밉다. 밉상이다. 밉살스럽다 등으로 사람을 밉게 보는 눈을 버리고, 아름다움과 사랑을 찾아내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 말을 통해서 화합의 사회를 만들고, 애정을 가지고 사람을 보는 눈을 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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