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요즘 정치권에서는 매일 누군가 구설에 오른다. 그보다는 덜 빈번하지만 연예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가 어떤 단어를 사용했는지, 어떤 표정으로 앉아있었는지를 두고 단순히 그 부적절함을 비난할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정신세계가 해부되곤 한다. 정치인이고 연예인이고 모두 인간이니 이런저런 실수를 하게 마련인데,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고 당사자는 해명의 압박을 받는다.

물론 누군가의 말실수나 태도는 그 사람의 인격 수준을 드러내는 좋은 단서다. 하지만 그것 하나로 그 사람 전체를 규정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다. 특히 그 대상이 정치인일 경우에, 구설에 집착하는 것은 정작 논쟁과 정치적 경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정책과 미래에 대한 비전은 뒷전이 되는 부작용이 생기니 문제다. 원래 토론이 되었어야 할 내용은 잊혀지고 태도 문제와 숨겨진 사상에 대한 논란만 남고 만다.

정책 논쟁은 없고 말꼬리만 잡는 정치인들의 행태에 비판이야 오랫동안 이어져 왔지만, 최근의 상황은 훨씬 더 나쁘다. 말 한마디를 둘러싼 다툼이 정치인들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의 이면에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급속하게 발전한 정보소통기술(ICT, 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이 있다. 이름의 뜻은 “정보를 전달하고 의사소통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기술”이지만, 실상 전달되는 정보는 제한적이고, 그 기술을 통한 의사소통은 맥락의 생략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말실수나 태도 논란으로 빚어지는 가해나 피해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잘못한 한 마디가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SNS를 통해 급속히 퍼져나가며, 과거에 얼굴만 찌푸리고 지나갈 일에도 수많은 비난의 댓글이 달린다. 설사 실수를 한 당시에 아무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10년 뒤 결정적인 순간에 발굴되면 똑같이 문제가 되어 버린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온라인 강의를 하게 된 한 젊은 선생이 수업 시간에 자신이 하는 발언에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 번 잘못하면 박제(剝製)되니까요.”

이런 상황에 대처할 때 유명인이나 정치인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가능한 말을 줄여 실수의 확률을 낮추거나, 아예 의도적으로 자극적인 표현을 써서 관심이라도 끄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당연히 후자를 택하고, 그 대신 상대방의 (의도된) 말실수를 그의 인격과 연결지어 공격하는데 온 에너지를 쏟는다. 시기에 따라 적절하게 강도를 조정하여 자극적인 말을 하고 살짝 거짓말을 섞어 관심을 끄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실력이 되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발전된 정보소통기술이 소통을 점점 힘들게 만드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 부질없는 싸움이 결국 사회적인 에너지 낭비와 부실한 정책 결정들의 원인이 된다.

정보소통기술로 말실수의 대가가 커지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 때문에 건전한 토론과 생산적인 논쟁이 방해를 받고 있다면, 이제 말실수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실수를 빙자하여 고의로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일을 반복한다면 더 큰 비난을 받아야 할 테지만,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말꼬리 잡기나 말실수에 대한 과도한 관심, 태도에 대한 논란 등은 애를 써서 억눌러야 한다. 기술이 없었다면 전혀 발현되지 않았을 우리의 까다로움을 과도하게 발산하면 모두 곤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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