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해마다 농사지어 찹쌀을 주는 친구
주는 시집 마다하고 인터넷서 사서 읽고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사인 값으로 밥 사준다

이마빡 벗어질까 염치는 있어갖고
사과 한 짝 들고 갔다가 못 볼 걸 봐 버렸다
장롱 짝 받치고 누워 힘쓰고 있는 내 시집

나 대신 고생 많다 오래도록 힘 좀 써라
엎드려 지은 햇곡 목 메이게 받아먹고
덕분에 열심히 써야지 내 할 일이 별거겠어

<감상> 시집을 낸 시인이라면 한 번쯤 겪을 만한 비사(秘事)가 있네요. 시집이 장롱 짝 받치고 힘쓰고 있는 모습을 봐 버렸으니 얼마나 실망이겠어요. 집에 어떤 책이 있는지, 책이 정리된 우선순위를 보면 그 사람의 정신영역을 알 수 있어요. 그래도 시인의 친구는 시집도 사주고 밥도 사주고 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시를 가르치는 어떤 이에게 시집을 주었더니 재활용창고에서 발견되고, 이름있는 분에게 선물하였더니 헌책방에 널부러져 있고, 한자리하신 시인의 시집을 받은 최측근들은 앞에선 찬사를 아끼지 않더니 뒤에선 폐기처분을 해요. 시집이 장롱이나 식탁을 받치느라 힘쓰듯이, 시인은 열심히 시를 써야 하겠지요. 그네들은 평생 내지 못하는 좋은 시집 한 권을 위해서.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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