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의정부경전철 등에서 노인에게 반말과 폭행을 한 중학생들이 노인학대 등의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SNS에 유포된 영상을 보면 이들은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어깨를 부딪치고 는“노인네, 고의성이 아니었다고…”하면서 반말이다. 격분한 노인이 꾸짖자 “쳐봐. 쳐보라니까. 못 치찮아”하면서 막무가내다. 어린 학생들의 반말이 폭력보다도 무섭게 느껴진다.

지난달에는 육군 주임원사 일부가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이 장교들은 부사관에게 반말을 해도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문제 삼아 국가인권위에 진정하는 초유의 사건도 발생했다. 이들은 남 총장이 영상회의 자리에서 ‘나이가 어려도 반말로 지시하는 장교들이 있는 데 당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존칭을 써주면 오히려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한다’라고 발언해 부사관인 자신들의 인격권이 침해당했다는 것이 진정 이유였다.

이를 두고 온라인 등에서는 “군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의견과 “군이라도 상호 존대하는 것이 맞다”라는 주장이 맞서는 등 논란이 뜨거웠다.

얼마 전에는 대학교수로 있는 지인이 식당에서 반말 때문에 혼이 났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다가 어려 보이는 여종업원이 마침 옆을 지나가고 있어 무심코 “여기! 물도 좀 갖다 줘”라고 했단다. 그랬더니 종업원이 바로 정색을 하며 “아저씨! 저 알아요!” 하더란 것이다. 당황한 지인은 얼른 사과부터 하고는 급하게 식당을 빠져나왔다고 했다.

반말에 대한 사회적 수용태도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생각 없이 반발을 내뱉다간 그 자리에서 바로 ‘큰 일’이 될 수도 있다. 자주 반말을 해오던 사이라도 상대방이 정색을 하며 ‘저한테 왜 반말하세요!’라고 문제를 삼는다면 그때부터는 어떤 것도 이유나 변명이 될 수 없다.

지금까지 괜찮았는데 왜 갑자기 이러느냐고 항변하다간 제대로 된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직장이나 사무실은 물론 시장이나 길거리 어디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반말을 문제 삼지 않아 다행히 그냥 지나갔을 뿐이지 누구에게도 어떤 곳에서도 반말이 허용되었던 적은 없다.

반말은 우리들에게 왜 이처럼 예민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이유가 있다. 반말은 ‘친근한 관계나 동료 간에 편하게 하는 말투’이기도 하지만 ‘아랫사람에게 낮추어 하는 말투’로도 자주 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늘 낮추어 말하는 식의 반말 때문이다. 이제 그런 반말은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통할 수가 없고 그냥 받아들여질 리도 없다. 그래서 반말하는 사람은 늘 하던 대로 무심코 할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뭐지? 나를 얕보는 거야?’ 하는 식으로 바로 예민한 문제로 비화하게 되는 것이다.

반말은 이제 인권의 문제다. 그래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안 하는 것이 맞는다. 나이나 지위, 직책, 친소, 관행 등 어떤 것도 이유가 될 수 없다. 반말의 허용범위는 각자의 사적 영역 내에서 가족과 친구, 동료, 절친 그리고 스승과 제자 사이 정도뿐이다. 스스로 그 범위를 좁히면 좁힐수록 더 좋다. 그 범위 외에는 반말은 안 하는 원칙이고 안 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다.

그러나 반말의 매력과 힘도 무시할 수 없다. 연인이나 친구 사이에서는 반말이 오히려 애정이고 하나 되는 연결고리다. 터놓고 반말하는 사이가 되어야 비로소 긴밀한 사랑과 우정도 확인하게 된다. ‘형님’,‘동생’ 하면서 형제처럼 지내는 절친 선후배 사이도 마찬가지다. 반말을 주고받아야 역시 훈훈한 정도 나고 관계도 더 끈끈해진다. 이때 반말은 더 없는 긍정 에너지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친근하고도 따뜻한 사랑의 비밀병기다.

반말의 두 얼굴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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