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맞닿은 초록빛 산등성이에 '가슴이 뻥'

조망이 트인 능선에서 본 경주 서녘 들판과 멀리 보이는 단석산 일대능선 모습.

경주 남산은 가까이 있어 자주 들리는 산으로 신라천년의 고도(古都)서라벌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는 보물 같은 곳이다. 이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많은 탐방로와 산행로가 정비되어 오르기도 편하지만 여러 방면으로 힐링과 함께 여유롭게 즐길 수가 있어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산이다.

경주남산 올렛길을 알리는 표석이 시작점 초입에 세워져 있다.

지난 주말 따사로운 겨울 볕이 남산 기슭에 내려앉은 시간에 ‘경주남산 올렛길’을 걸었다. ‘올렛길’이라고 표기한 표석이 있긴 하지만 딱히 이정표라든지 안내판이 없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제주올레가 한창 이름을 날리던 시기에 전국에 수많은 곳에서 ‘올레길’, ‘둘레길’등 여러 이름으로 도보여행지가 생겨날 때 ‘경주남산 올렛길’로 이름 지어진 것 같다.

경주남산국립공원 탐방로 안내판.

‘경주남산 올렛길’이 정식 명칭은 아닌 듯하지만 ‘남산국립공원 탐방로’라는 공식 명칭으로 남산일원에 표지목이 붙어 있고 탐방로를 따라 여러 갈래길이 나있어 너른 남산 일대가 힐링하기 좋은 산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시작점에서 본 도당터널과 좌측 공터에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이 있다.

경주시내에서 고속도로로 나가는 도로에 있는 도당터널 앞에서 시작하는 경주남산 올렛길 초입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타고 간 차를 대놓고 첫발을 내디뎠다. 주차한 곳에서 터널쪽으로 50m 가까이를 가서 왼쪽 산길로 접어든다. 500m 정도 들어간 곳에 삼거리 표지목이 서 있다. ‘남산국립공원탐방로’와 ‘삼릉 가는 길(김호장군 고택)’, ‘월정교‘ 갈림길이라고 알려주고 좌측으로 난 탐방로를 따라 야자수 매트가 깔린 평탄한 길을 걸어 오른다. 조금 전에 지나온 삼거리에서 곧장 가는 길이 월정교에서 삼릉까지 가는 ‘삼릉 가는 길’이라 불리며 필자도 몇 차례 다녀 본 적이 있어 기억이 새롭다.

소나무와 떡갈나무 등이 숲을 이루는 틈에 난 산죽(山竹)사이로 길이 나 있고 지나면 숲 사이로 많은 무덤들이 보인다. 경주 남산이 명당지라는 속설에 예전부터 이곳에 무덤을 많이 만든 모양이다. 국립공원이 되고 공원 안 분묘를 이장하라는 안내판이 군데군데 붙어 있는데도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 그리 쉽지 않은 일 같다.

탐방로 한 켠에 외롭게 서있는 돌탑에 볕이 들었다.

경주 남산은 알려진 대로 신라시대 불국정토(佛國淨土)라 할 정도로 불교유적이 많아 어디를 가도 석불과 탑, 그리고 절터 등을 볼 수 있고 유물과 유적으로 보존되어야 할 많은 것이 있는 곳이라 우리 모두가 아끼고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산 곳곳을 둘러보면서 이러한 유적과 유물들을 직접 볼 수가 있어 산교육 현장으로도 손꼽히는 곳이라 나무하나 풀 한 포기, 바위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자손만대에 길이 물려줄 소중한 문화유산이라 더욱 그렇다.

조그마한 광장에 조성된 바위와 소나무가 에사롭지 않고 그 앞에 놓인 나무뿌리와 망개 열매가 이채롭다.

이런저런 상념으로 걷다 보니 길 양편에 키 큰 나무들이 지난 태풍으로 꺾여 쓰러진 채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한다. 자연의 위력이 얼마나 엄청난지 실감하는 게 한 두 번이 아닌 요즈음 세상이다.

탐방로를 따라 40여분 올라 만나는 지점에 있는 ‘삼화령’이란 곳에 있는 ‘경주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 삼존상 출토지’를 둘러본다. 이곳 석실에서 출토된 삼존상을 1925년 4월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겼다는 내용과 이 삼존상은 7세기 초 신라 불교조각을 대표하는 불상이며 지난해 8월 보물2071호로 지정되었다는 안내판이 있어 유적지를 또 한 번 접할 기회가 되었다.

경주남산 올렛길 시작점에서 남산 주봉 금오봉(金鰲峰 468m)까지 4.7㎞ 이정 중간지점에서 경주 남산신성(南山新城, 사적 22호)에 관한 설명이 쓰여 진 안내판을 만난다. 신라 진평왕이 성을 쌓았다는 설명과 함께 지금은 아래쪽 받침돌이 부분적으로 확인이 된다고 한다. 안내판을 지나 한참을 가다 왼쪽에 돌담이 남아 있는 부분이 있어 여기가 성이 있던 자리임을 알 수 있다.

오솔길처럼 나 있는 탐방로 밑바닥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니 바닥에 보이는 나무뿌리들이 앙상한 갈비뼈처럼 보이며 차가운 땅바닥에 여기저기 박혀있는 모습이 애처로워 마음이 아파진다. 무심코 밟고 지나는 인간은 아무 감각이 없었지만 밟히는 뿌리들은 얼마나 아프고 서글펐을까. 자연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서로의 입장도 살필 줄 아는 이성적인 여유도 품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경주 남산신성 안내판을 지나 조금 더 오르니 조망이 트이고 포석정 앞에서 남산 주릉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와 하늘이 맞닿아 산객을 시원하게 만든다. 푸른 소나무 숲 너머로 경주 서녘 들판이 훤히 보이고 멀리 단석산이 우뚝 솟아난다. 지나는 길목에 곱게 쌓아 둔 돌탑이 햇볕을 받으며 외롭게 서있고 오른쪽 능선 너머 들판이 더 크게 보이는 지점에 이른다.

금오봉이 2.6km 남았다는 이정목이 세워진 지점에서 우측으로 빠지면 ‘남간사 당간지주’ 입구로 가는 길이라는 표지가 나오고 그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남산에서도 찾기 힘든 약수터가 나온다. ‘당간지주(幢竿支柱)’는 통일신라시대 사찰 앞에 당(幢:불화를 그린 기)을 걸기 위해 설치했던 돌이나 철재 또는 나무로 높게 세운 2개의 기둥으로 그 주변이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현존하는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것으로 보물로도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다시 발길을 옮겨 금오봉 쪽으로 나서면 너른 공터가 나오고 쉴 수 있는 나무벤치가 여러 개 있는 곳이 보인다. 이곳이 포석정 앞에서 시작되는 남산순환도로와 만나는 해목령(蟹目嶺)이다. 고개 이름이 재미있다. ‘蟹(게, 가재)’, ‘目(눈)’으로 ‘가재의 눈’이란 뜻인데 아무리 봐도 그렇지 않은 평범한 평지인데 다시 보아 진다.

금오정이 있는 암릉에서 바라 본 조망이 시원스럽고 기(氣)가 모이는 듯하다.

남산순환도로가 해목령, 금오정을 지나 금오봉을 넘어 지바위골과 국사골이 있는 남산동 앞으로 갈 수 있는 임도로 만들어져 있다. 꽃피는 봄철이나 단풍이 물든 가을날에 순환도로만을 걸어도 상쾌한 도보여행이 될 수 있다. 해목령 쉼터에서 금오정까지는 1km 남짓 남는다. 이제부터는 임도를 타고 걷는 길이라 편안한 발걸음이다. 가는 길목에 조그마한 광장이 만들어진 곳을 지난다. 한가운데 둥글게 나무 울타리가 쳐진 곳에 소나무와 바위가 조화를 이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휘어진 소나무가 예사롭지 않고 울퉁불퉁 튀어 오른 바위 또한 범상치 않다. 광장 바닥에 동그랗게 올라 온 조그마한 바위 위에 놓아 둔 마른 나무뿌리에 빨간 망개 열매가 산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재미난 풍경이다.

겅주 남산은 전체가 바위산으로 이뤄져 있어 어디를 가도 기이한 바위와 웅장한 암릉이 이 산의 기(氣)를 말해준다. 이곳에 불교 유적과 유물이 많은 이유가 바위산에서 뿜어 나오는 센 기운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금오정(金鰲亭)이 있는 암릉에 올라 남산을 두루 조망하며 큰 호흡으로 신라 천년의 기(氣)를 한 몸에 담아본다. 사방이 트인 조망이 일품인 이곳에다 정자를 짓고 탐방객들에게 기쁨을 주는 경주 남산의 너그러움에 감사하며 다시 한 번 남산의 너른 품을 생각해 본다. 금오정이 마침 보수 중이라 들어가지 못하고 뒤돌아 나오며 볕 잘 드는 능선에서 늦은 점심을 즐긴다. ‘경주 남산 올렛길’ 일부를 2시간 가까이 걸은 후 되돌아 내려오는 길에 출발점에서 들리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도당터널 가까이 있는 ‘상서장(上書莊)’에 들렀다.

고운 최치원이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를 썼다는 상서장(上書莊)과 그가 지은 시(詩) 범해(泛海)가 새겨진 석물 모습.

신라 말기 대문호이며 학자였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 ?)이 망해 가는 신라를 걱정하며 진성여왕에게 올렸다는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를 쓴 곳이라 알려진 상서장 높은 담벼락을 쳐다보며 한 시대를 풍운(風雲)처럼 살았던 ‘외로운 구름’ 최치원의 덧없음을 되새기면서 ‘힐링 앤드 트레킹’ 스물두 번째 ‘걸어서 자연 속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글·사진 =김유복 경북산악연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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