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범 한류연구소장.

평생 트롯을 ‘뽕짝’으로 여기고 외면했던 나에게 한 소녀가 나타났다. 그가 부른 ‘서울 가 살자’ 첫 소절을 듣고 그만 눈물을 쏟았다. 그는 평범한 노래를 고급스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전유진은 포항에 사는 중학생이다. 전문 보컬 트레이닝도 안 받고 독학으로 코인노래방에서 트로트를 연습했다. 단 3개월 만에 19회 포항해변전국가요제에 출전해 압도적인 무대로 대상을 거머쥐었다.

1년 반이 지나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2’에 출전한 전유진은 그야말로 광풍과도 같은 인기몰이를 했다. 그가 부른 ‘서울 가 살자’와 ‘약속’은 수많은 사람에게 엄청난 카타르시스와 감동을 선사했다. 30%에 육박하는 시청률 상당 부분 그가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5주 연속 ‘대국민 응원투표’ 1위를 차지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1위도 보통 1위가 아니다. 여러 가지 지표를 종합해보면 전유진 득표율은 나머지 참가자 전체와 비슷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의 인기와 팬덤은 마치 블랙홀과 같다. 실로 경이로운 마력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인기 비결은 불가사의하다. 혹자는 천상계의 음색이라고 말한다. 혹자는 중저음과 고음의 완벽한 조화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의 청순함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아름다운 마음씨에 푹 빠지는 사람도 있다. 그를 통해 아련한 첫사랑을 떠올린다는 증언도 줄을 잇고 있다. “한 번도 안 들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다”는 것이 정설로 통하고 있다. 그는 수년 내에 K-트롯 한류로 전 세계를 사로잡을 재원이다. 단언컨대 그는 방탄소년단과 함께 21세기 한류를 이끌 것이다.

경연 초기부터 흉흉한 소문이 온라인에 퍼지기 시작했다. 전유진은 시청률용 미끼에 불과하고 이미 진선미로 내정된 가수들이 있다는 음모론이었다. 전유진이 미성년자이기에 진이 된다면 향후 활용도에 크게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 논리 근거였다. 준결승전부터는 팬의 인기투표가 사실상 진을 결정한다. 거의 50%에 가까운 압도적인 팬덤을 가지고 있는 그가 준결만 오르면 무조건 진이 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전유진을 최대한 흥행몰이에 이용한 후 준결 전에 내친다는 논리이다.

이 소문이 현실로 바뀌었다. 4일 방송된 ‘미스트롯2’에서 전유진은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날 나를 포함한 수많은 팬이 같이 눈물을 흘렸다. ‘전유진’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오르고 온라인에는 비난의 글이 넘쳐났다. 사람들은 흡사 가족 잃은 것 같은 슬픔에 빠졌다.

사람들은 전유진에게서 똑같은 감정이입을 한다. 친딸처럼 그를 ‘절절’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도 못하고 내쳐진 것이다. 데스매치에서 상대에게 경연곡을 양보하고, 팀 메들리에서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에이스전도 또 양보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니라 ‘탈락’이었다. 학교폭력 의혹 참가자에게는 아름다운 퇴장을, 양보의 화신에게는 모욕감을 줬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있다. 탈락 후 그는 인스타그램에 올린 손편지에서 “제가 떨어져서 아픈 마음보다 응원해주시고 매일 문자투표 하트 보내주신 팬들의 마음이 아플까 봐 걱정”이라며 “바르고 착한 어른으로 커서 마음을 치유하는 노래를 부르겠다”며 오히려 팬들을 위로했다. 부끄럽다. 낯이 뜨거울 정도로 부끄럽다. ‘바르고 착하지 못한 어른들’에게 이용당하고 내침을 당했음에도 ‘바르고 착한 어른’으로 크겠다는 어린 소녀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16세 소녀가 오히려 어른들을 치유하고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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