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네 등 뒤에 꽃을 두는 일은 서사적이다
밤보다 깊은 새벽을 밝히는 현재의 일이다
가고 올 시간의 흔적을 보듬는 일
이별의 비수와 비가를 숨기기엔 이 계절이 너무 짧다
너를 품어 꽃을 피웠지만 자리마다 물컹하다
모든 서사는 지금, 바로지금 서정적으로 완성된다
지나보니 꽃 피고 잎 지나 잎 지고 꽃 피나
무릇무릇 사랑이라 부르던 것들이 죄다 미쁘다
너를 건너왔으니 나를 데려와야지
머리를 버리고 심장을 얻었다, 가벼웠다
흔들리던 날들이
마른 나무에 핀 꽃 순처럼 싱싱하다
울던 별들이 지면 새싹은 움 튼다
네 등 뒤에 꽃을 두고
걸어 온, 걸어갈 길을 벅차게 걷고 있다


<감상> 시의 부제인 ‘즉시현금 갱무시절’은 ‘바로 지금이지 다시 시절은 없다’라는 뜻이다. 그대 등 뒤에 꽃을 두는 서사도 바로 지금 완성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때의 시절 인연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살아오는 동안 떠나보낸 시절 인연을 경험하지 않은 이가 어디 있으리. 심장으로 얻은 사랑이라 이름 지을 수 있기에 죄다 진실이라고 위안을 삼는다. 물먹은 별이 지상에 내려오면 싹으로 움트듯, 언젠가 네 앞에서 꽃을 전해 줄 날을 기다리며 벅차게 걸을 수밖에 없다. 꽃과 잎이 번갈아 피듯 우리네 인생사도 색즉시공의 순환에 놓여 있다.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해 인연이 닿지 않는다면 다음 생의 지금에도 네 등 뒤에서 꽃을 들고 서 있겠다. <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