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저의 집에서 검도장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입니다. 저녁마다 그 거리를 걷다 보면 묘한 느낌이 듭니다. 타임슬립이라고 하나요?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마치 ‘시간의 뒤뜰’을 산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심이라 그 주변이 다 고층아파트와 큰 병원 건물들인데 그 길만 4~50년 전 모습 그대로입니다. 수십 년 전의 풍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풍광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도 모두 옛사람들입니다. 그 골목길 안으로 들어서면 저희 또래가 젊은 축에 속합니다. 80대 고령의 이발소 아저씨는 저만 보면 “관장님, 보기 좋습니다”라고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운동하는 이웃이 젊고 활기차서 기분이 좋으시다는 겁니다. 검도장을 오고 가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도장 안에서 울리는 우당탕거리는 소음도 들어줄 만하다는 표정입니다. 최근에는 경사도 있었습니다. 골목 한가운데 있는 지붕 높은 한옥 한 채가 큰돈을 들여 새 단장을 했습니다. 구청에서 지원도 좀 받아서 온갖 정성을 다해 때를 빼고 광을 냅니다. 먼지도 꽤 나지만 이웃들이 모두 양해합니다. 욕심 같아서는 저도 인근의 주택을 하나 구입해서 작은 앞마당을 두고 느긋하게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만 여의치가 않습니다.

동네 전체가 도시의 뒤뜰이지만 그 안에서도 또 뒤뜰 역할을 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큰 골목 앞쪽으로 건물들이 들어서고 뒤쪽에 있는 집터들은 주로 공용주차장으로 사용됩니다. 그런 뒤뜰 마당 중 하나에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생가터’라는 팻말이 붙은 곳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곳의 야트막한 동산이 오포(午砲)를 쏘던 곳이어서 아직도 오포산 자락으로 이곳을 기억하고 있는 분들도 계시답니다. 다니면 다닐수록 정이 드는 곳입니다. 뒤뜰은 앞마당과는 달리, 땔감을 쌓아두거나 은근히 혼자 즐기고 싶은 것들이 놓이는 장소입니다. 장작더미도 높이 쌓아놓고, 장독대도 가지런히 늘어놓고, 얌전한 화초 몇 그루 심어 놓고, 툇마루에 앉아 석양의 고즈넉한 풍광을 음미하기도 하는 곳이지요. 그런 은근하고 소박한 뒤뜰 공간이 집 가까이 있다는 게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지금 누리고 있는 뒤들의 혜택에 대해서 몇 자 적다 보니 문득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 선생의 괴산 제월리 고택을 일견하던 30여 년 전의 일이 떠오릅니다. 선생이 감옥에서 나와 서울에 올라가기 전 잠시 머물렀다는 곳인데, 뒤뜰 역할을 하던 야트막한 동산의 그 수려한 풍광에 큰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첫눈에 그저 굉장했습니다. 약간 과장하자면 ‘쓸쓸하고 아름다운 신의 집터’라고나 할까요? 인간들이 소유하기에는 너무 완벽한 땅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완만하게 곡선 지어진 능선 위에 알맞게 늘어선 소나무들의 행렬이 마치 잘 그려진 그림처럼 한눈에 꽉 차게 들어왔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원래 그 집은 묘막(墓幕, 묘지기가 사는 집)의 용도로 지어졌던 것이라 하니 당시 제 느낌이 그리 크게 빗나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산 자의 효심과 죽은 자의 영이 함께 머무는 곳이니 그리 장엄했던가 싶기도 합니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찾고 싶은 ‘추억의 장소’ 중 한 곳입니다.

지금까지 드린 말씀은 사실 몇 년 전의 일과 소감입니다. 검도장도 폐업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며칠 전 우연히 검도장 있던 골목을 다시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풍광이 많이 바뀌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젊은이들이 창업한 ‘뒤뜰 카페’가 몇 곳이나 성업 중이었습니다. 오래된 할아버지 이발소집도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집이 헐리고 넓은 빈터에 새 건물이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사라진 이발소를 보며 문득 ‘오래된 이발소가 있던 곳’이라는 작은 팻말 하나 세워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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