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천 경운대학교 초빙교수
한태천 경운대학교 초빙교수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중략…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 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하시네.’ ‘설날 교통체증 최악, 명절 증후군, 며느리들 몸살.’ 너무도 익숙한 말들이다. 전자는 설날이면 아이들이 즐겨 부르던 설날 노래이고, 후자는 설날 전후 TV와 신문을 장식하는 주요 기사 주제어이다. 설날은 동요 가사처럼 색동옷 차려입고 아버지 어머니께 세배드리고, 떡국을 차려놓고 조상님에게 제사 올리며 새해의 복을 기원하는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그런데 2021년 설날은 코로나19로 인해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됨으로써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불가능해져 설날 증후군이라는 용어는 사용되지 않을 듯하다.

세상 모든 사람은 여성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대부분의 남성은 여성을 아내로 두고 있고, 여성의 몸을 빌려 자식을 낳으며, 여성의 남편으로 살고 있다. 대부분의 여성은 여성의 딸로 태어나 여성의 어머니로, 그리고 다른 여성의 시어머니로 살고 있다. 인류의 반은 여성이다. 여성 없는 인류는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런데 왜 명절만 되면 대두되는 며느리들의 힘겨움은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어느 가정에 설날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해 본다. 그 가정의 구성원은 대부분 무신론자로 명절 제사 등에 남다른 예와 도리를 다하는 사람이었고, 딸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며느리들이 평소 집안일을 잘해 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한 남성들이 며느리들이 설날 해외여행을 갈 수 있도록 주선했다. 명절 차례는 남성들만 모여서 지냈다. 설날 아내를 여행 보냈다는 남편의 뿌듯한 마음, 설날 해외여행을 주선해 준 남편에 대한 고마움, 며느리들만의 자유로운 여행. 그 결과 가정에 행복한 웃음만이 그득했다. 혹 전통과 예법을 망각한 처사라고 탓하는 이도 있겠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참으로 아름답고 권장할 만한 일이라 생각된다.

설날의 의미 중 주요한 것은 가족의 화합, 부모님에 대한 효도,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화합과 부모님에 대한 효도, 전통의 유지는 본질은 그대로 지키되 방법과 내용은 시대의 흐름과 가치에 따라 바꿀 수도 있다. 가족의 누군가를 힘겹게 하면서 꼭 설날 모여 세배를 드려야만 효도하는 것이고 전통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화창한 봄날, 또는 다른 어느 맑은 날을 택하여 야외행사를 겸하는 효도 잔치도 좋다. 특정 며느리의 역할에 의존하는 행사가 아니라 모든 가족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하는 행사가 좋다. 이미 우리 사회는 일반적인 가족 모임 행사는 전 가족이 역할을 분담하는 것에는 인식이 보편화 되고 있다.

소중한 문화유산은 계승되고 간직되어야 한다. 그러나 단순한 계승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추가하여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새로운 가치의 추가란 전통을 버리는 것이 아니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전통에 가려진 어렵고 힘들었던 것들을 지워나가는 방향으로 개선되는 것을 의미한다. 삼년 탈상에서 당일 탈상이나 매장에서 화장으로 변화된 장례문화, 명절에의 간편한 복장. 이런 것들은 문화유산 계승에 새로운 가치가 추가된 것들이다. 그동안 전통이라는 이름과 가족 화합이란 명목으로, 효의 이름으로 며느리에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했던 설날. 설날 증후군이란 사회적 용어를 만들어내었던 무거운 짐. 이는 우리 시대가 반드시 해소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다. 세상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을 위하여, 며느리의 마음에 영향을 받는 세상의 반을 차지하는 남성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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