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우의 세상읽기] 그래도 믿을 곳은 사법부
[허성우의 세상읽기] 그래도 믿을 곳은 사법부
  • 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21년 02월 17일 15시 51분
  • 지면게재일 2021년 02월 18일 목요일
  • 19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헌법 제103조에 따르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요즘 사법부를 보고 있으면 사법부가 총 맞은 느낌이라 대한민국 사법 정의가 살아 숨쉬기가 녹녹지 않게 보인다.
 

사법부를 특정 집단이 장악하고 사법부 독립이 과하다고 입법부가 사법부의 견제를 넘어 목까지 비틀고 있다. 사법부 독립 없는 선진국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김영삼 전(前) 대통령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말했듯이 사법부 목을 비틀어도 사법부는 존재한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사법부 특정 세력이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법농단 사건 진상 조사」에 참여한 법관들과 일명 「판사 블랙리스트 사건」에 참여한 판사들을 사법부 주요 보직(補職)에 배치하면서 시작되어 급기야는 사법부와 청와대에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국회」 출신들이 주요 보직을 꿰찼다고 한다. 특히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11명 중 6명, 헌법재판관 8명 중 5명이 특정 세력들로 채워졌다고 하니 도(道)가 지나치다고 본다.

어느 조직이든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 하듯이 이러한 일련의 인사를 보노라면 꼭 군부시절 하나회를 연상시키는 느낌이다. 하나회는 당시 신군부 세력의 핵심이었으며, 군의 진급과 인사 때마다 주요 보직을 독차지하면서 군을 장악하고 정치군인들을 키웠다. 그러나 천하무적(天下無敵) 같던 하나회도 결국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해체되고 말았다. 특정 정치군인이 군부를 장악한 정치군인과 사법부의 특정 세력의 정치판사와 무엇이 다른가? 그래도 사법부는 군부시절과 민주화를 거치는 동안 정치판사라는 오명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왜냐하면 사법부는 위기 때마다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 양심을 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최후의 보루(堡壘)를 「사법부」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서 패하고 나서 대선 패배에 대한 회고록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혹시 우리가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진보적 가치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선을 그어 편을 가르거나 우월감을 갖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회고록에서 말한 내용이 현실에서는 강한 부정이 강한 긍정으로 되고 말았다.

지금 사법부는 특정 세력이 정치적 우월감으로 편을 가르고, 민주화에 대한 정신은 온대 간대 없이 헌법정신을 헌신짝처럼 차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민주당은 초유의 법관 탄핵을 감행했다. 이 와중에 사법부 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은 정치권으로부터 사법부 정의를 사수하기 위해 온몸으로 사법부를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정치권과 부화뇌동(附和雷同)하고 자신의 직(職)을 위해 정치적 거래를 했다고 하니 이게 대법원장의 정치적 중립인가? 결국 사법부 수장(首長) 스스로가 사법권위와 신뢰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쳐버렸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26일 취임사에서 “국민은 법관이 사법부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로부터도 온전히 독립해 헌법과 법률에 의해 심판하기를 원한다.”라고 했던 말 역시 허언(虛言)이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짧은 시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시킨 세계에서 보기 드문 국민들이다. 그래서 정보화시대마저도 쉽게 적응하면서 정치를 리드하고 있기에 국민들은 사법부가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판결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아무리 민주당이 173석으로 사법부를 옥죄고 신상을 털어봤자 3년이다. 3년 후면 정권도 국회도 바뀐다. 정권이 사법부를 길들이기 위해 인사권을 휘두르고 마녀사냥을 한다 한들 그 역시 시간이 해결할 것이고 그 사실에 대한 진실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

세상이 편하게 돌아가려면 이치(理致)가 맞아야 한다. 인간은 무언가 불안하고 불편한 진실이 난무하면 기댈 곳을 찾기 때문에 법을 수호할 수 있는 영웅을 찾거나 혹은 옳고 그름을 판단해주는 사법부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게 사법부의 가치이자 존재의 이유다. 그래서 사법부는 정치권에 대해 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정치권에 대해서는 법대로 하고 당당해야 된다. 우리는 머지않아 일그러진 사법부의 자화상을 용기 있는 사법부 누군가가 바로 세워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때까지 사법부를 믿고 기다리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