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사무총장·서경대 겸임교수
진세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사무총장·서경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국장. 젊은 판사들이 밥 먹을 때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뭔지 아세요?”

일간지 사회 부국장 시절, 회식 자리에서 법원 취재 기자가 던진 질문이다.

정답은 ‘엄마 얘기’였다.

내심 놀랐다. ‘세속의 신(神)’처럼 인식돼온 판사들이 ‘엄마’를 가장 많이 입에 올린다는 건 의외였다. 설명은 이랬다.

“젊은 판사들 상당수가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 관리를 받아온 친구들이에요. 무슨 외고 이런 데 가는 것도 엄마가 꾸려준 과외, 학원 덕분이구요, 법대 들어가서도 스터디그룹 만들고, 선생 붙여가며 사시 준비시킨 사람도 엄마예요. 엄마가 이들을 법관으로 만든 셈이죠. 그러니 ‘엄마, 엄마’ 되뇌며 사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예요.”

“판결도 엄마한테 묻고 내리는 거 아닌가?”라며 웃고 넘겼지만 뭔가 찜찜했다. 일부 법관의 사례에 불과한, 과장된 얘기임이 분명한데도 뭔가 실망스러운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국민들은, 검찰은 의심스럽게 보면서도 법원은 무턱대고 믿으려고 한다. 믿을 곳 하나쯤은 갖고 싶다는 생각 때문인지 모른다. 한데, 법원은 과연 믿을 만한가?

중국의 풍자 만화가이자 시인인 쭤허쉐이(左河水)는 『땡중(僞和尙)』이란 작품에서 “속물 주제에 어르고 뺨쳐 승복 얻어 걸치고, 속세 초월한 듯 고상을 떨며, 불경을 끼고 오계(五戒)를 논하는데, 길에서 여인을 만나면 눈짓부터 날리더라”며 관리들의 위선을 풍자했다.

중국 진(秦) 시대 편찬된 『呂氏春秋』도 ‘의사(疑似)’편에서 “옥(玉) 장인이 걱정하는 것은 옥처럼 보이는 돌이고, 검 장인이 걱정하는 것은 보검 간장(干將)처럼 보이는 검이다. 나라 망치는 임금이 지혜롭다고 알려지며, 나라 팔아먹는 신하가 충성스럽게 보인다”고 경계했다. 나쁜 것, 악한 것보다 사이비(似而非)가 더 안 좋다는 얘기다. 경계를 해제시켜 최악의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사이비들의 특징이 궤변(詭辯)이다. 인간의 간특(奸慝)을 보여주는 사례가 성경에 나온다. 불의(不義)한 유대인들은 주장한다. 인간의 불의로 인해 하나님의 의(義)와 영광이 드러났다면, 이는 하나님께 공헌한 것이고, 따라서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고.

중국 사가들은 5호16국 시대 손초(孫楚)를 궤변의 달인으로 꼽는다. 수석침류(漱石枕流)라는 사자성어를 만든 자다.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는 뜻이다. 돌과 물이 바뀐 사연은 이렇다.

혼탁한 세상을 비판하며 고고한 척 은거를 선언하면서 손초가 한 말이 수석침류다. 친구가 웃으며 “수석침류가 아니라 침석수류겠지”라고 고쳤다.

실언인 줄 깨달았지만 교만한 손초는 끝까지 우겼다.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 건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기 위함이요, 돌로 양치질한다는 건 이(齒)를 단련하기 위함일세”

최근 현직 부장판사가 대법원장과 탄핵 소추된 동료 부장판사를 모두 비판했다. 특히 대법원장에게는 ‘거짓 해명을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대법원장은 녹음되는 줄도 모르고 “사표 내는 건 좋은데 법률적 고려 외의 다른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등 궤변도 늘어놨다. 녹취한 부장판사의 인격 역시 딱 그 수준이다. 법관인 듯 법관 아닌 법관들이다.

법원 개혁은 2015년 향판(鄕判) 문제가 불거졌을 때부터 제기됐다. 이제 법조계와 국회가 머리를 맞대고 법관의 임용·감찰·평가·징계 체계를 골자로 한 법원 개혁을 논의할 때가 됐다. 법원 개혁은 사법 개혁의 종착지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그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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