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연일 前 포항대 사회복지과 교수·시인
배연일 前 포항대 사회복지과 교수·시인

언론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요즈음 언론매체에서 쓰는 말이나 글을 보면 ‘아, 저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정말 한두 번이 아니다. 이를테면 ‘패싱’, ‘셰프’, ‘팩트’, ‘로드맵’, ‘프레임’, ‘팁’, ‘시그널’, ‘버블’, ‘디테일’, ‘멘탈’, ‘키워드’, ‘리스크’, ‘블랙 아이스’, ‘모니터링’, ‘뉴노멀’, ‘셧다운’, ‘언택트’, ‘번아웃’, ‘코호트 격리’, ‘포스트 코로나’, ‘코로나 블루’ 등의 외국어를 다반사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서 저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계층(특히 노년층)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언론매체는 이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날이 갈수록 외국어를 더 많이 쓰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말로 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데도 말이다.

결론부터 말해 우리말로 해도 뜻이 통한다면 당연히 우리말을 쓰는 게 옳다. 그런데도 언론은 우리말을 두고 외국어를 너무나도 대수롭지 않게 쓰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부터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우리말로 해도 되는데, 왜 저렇게 외국어를 즐겨 쓰는지 필자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예컨대 ‘배제(또는 제외)’를 ‘패싱(passing)’, ‘요리사(또는 주방장)’를 ‘셰프(chef)’, ‘사실(또는 진상)’을 ‘팩트(fact)’, ‘청사진’을 ‘로드맵(roadmap)’, ‘구도(또는 틀)’를 ‘프레임(frame)‘, ‘정보’를 ‘팁(tip)’, ‘신호’를 ‘시그널(signal)’, ‘거품’을 ‘버블(bubble)’, ‘세부(細部)’를 ‘디테일(detail)’, ‘정신(력)’을 ‘멘탈(mental)’, ‘중요어(또는 핵심어)’를 ‘키워드(key word)’, ‘위험’을 ‘리스크(risk)’, ‘노면 살얼음(또는 살얼음)’을 ‘블랙 아이스(black ice)’, ‘관찰(또는 감시)’을 ‘모니터링(monitoring)’, ‘새로운 일상(또는 새로운 기준)’을 ‘뉴노멀(new normal)’, ‘조업 중단(또는 임시 휴업)’을 ‘셧다운(shutdown)’, ‘비대면(非對面)’을 ‘언택트(untact)’, ‘탈진(또는 극도의 피로)’을 ‘번아웃(burnout)’, ‘동일 집단(또는 통째) 격리’를 ‘코호트(cohort) 격리’, ‘코로나 이후’를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 ‘코로나 우울’을 ‘코로나 블루(corona blue)’로 쓰고 있다. 물론 어떤 때는 우리말과 외국어와 함께 쓰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위에서 열거한 말들은 우리말만 써도 뜻이 통한다.

그런데도 많은 언론매체는 우리말을 쓰지 않고 외국어를 마치 습관처럼 쓰기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게다가 영어를 우리말과 함께 쓸 때는 영어를 먼저 쓰고 우리말은 괄호 속에 넣고 있다. 이처럼 주객(主客)이 전도된 모습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주지(周知)의 사실이듯 신문 등에서 한글과 한자를 병용(倂用)할 때는 우리말을 먼저 쓰고 괄호 속에 한자를 넣지 않는가. 그런데 왜 영어는 그렇게 하지 않는가 말이다. 더욱더 속상한 것은 언론이 이렇게 외국어를 남용하는 데도 관계 당국과 관련 단체는 손을 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요컨대 우리말로 해도 뜻이 통한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말을 써야 한다. 단 이해를 돕기 위해 외국어와 함께 써야 한다면 그땐 꼭 우리말을 먼저 쓰고, 외국어는 괄호 안에 넣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말과 우리글을 소중히 여기고 살리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