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감자를 삶는다. 흐린 불빛 아래 감자를 먹는다. 비가 내리
고 누군가의 심장 같은 감자가 따뜻하다. 일손을 놓고 휴식
처럼 감자를 먹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빗소리를 들으며
젓가락으로 포크로 감자의 심장을 푹푹 찌르는 저녁이다. 어
릴 적 친구 미자 같은 만만한 감자, 나는 자주 감자를 먹는
다. 그때마다 비가 내렸다. 냄비 속에 새알처럼 담겨진 감자
는 순하고 말이 없다. 비는 한 알 한 알 감자의 내부를 파고
든다. 내가 조용히 앓고 있던 슬픔이 저 혼자서 감자를 먹는
다. 감자는 나를 익히고 내리는 비를 가만히 듣는다. 그때 내
가 조금 미안했어 하며 감자를 삶는다. 비는 감자를 익힌다.
노란 냄비가 모락모락 익어간다.

저것은 감자가 아니다.


<감상> 감자는 척박한 땅에서 슬픔을 먹고 자라 울퉁불퉁하다. 깡마른 가족들의 손과 감자는 너무 닮았다. 비가 오면 늘 감자를 먹기에 나는 비가 오기를 기다린 적이 있다. 주름지고 까만 얼굴의 식구들이 감자의 심장을 찌르면서 저녁을 먹는다. 소의 눈동자처럼 순하게 감자를 먹는 적막한 식욕들, 말하지 않아도 다들 통한다. 비록 가난하고 슬픔이 몰려오는 집이지만 둥글게 앉아 일용할 양식을 온전히 나눠 먹는 온정이여! 오히려 감자가 나를 익히고 비를 기다린다. 비와 감자와 식솔들이 운명공동체로 살아가는 밥상이 그리워진다. 저것은 감자가 아니라 농부들의 심장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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