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이 눈을 깜짝거린다
세계는 그러한 무수한 간단(間斷)

오오 사랑이 추방을 당하는 시간이 바로 이때이다
내가 나의 밖으로 나가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산이 있거든 불러보라
나의 머리는 관악기처럼
우주의 안개를 빨아올리다 만다

<감상>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이 깜박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둠이 몰려오듯 피곤이 급습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위해 하루를, 일생을 걸수록 피곤한 시간들은 간단(間斷)에 놓이게 됩니다. 간단은 말 그대로 사이가 끊어진다는 이야기일 테죠. 내 안에 사랑이 느껴지지 않고, 내 안에 진정한 자아가 자리 잡지 못하고 단절되고 맙니다. 언젠가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인지 귀를 열어둘 때가 옵니다. 그때 지긋이 눈을 감고 있다가 가늘게 떠봅시다. 그러면 노을 풀어 놓고 안개를 감싸는 늙은 산이 보입니다. 산봉우리가 꼭 관악기처럼 앉아 적막의 악보를 풀어놓을 겁니다. 그때 나의 머리도 관악기가 되고 우주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받아 협주(協奏)할 날이 오겠지요. 시가 내게 찾아오는 방식도 이와 같았으니까요. <시인 손창기>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