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협 법무법인 신라 변호사

현행 도시정비법은 재개발재건축조합의 설립인가를 득한 이후 시공자선정을 할 수 있음을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06년 8월 25일 도시정비법이 개정되기 전 구법에서는 이러한 규정이 존재하지 아니하였고, 수많은 조합은 조합이 설립되기 전인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시공자를 선정하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이와 같이 추진위원회 단계에서의 시공자선정행위가 적법한지에 대하여 대법원 2008. 6. 12. 선고 2008다6298 판결은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개최한 토지등소유자 총회에서 시공사를 선정하기로 한 결의는 무효에 해당한다”라고 판단하여 입장을 정리하였다. 다만 대법원 2012. 4. 12. 선고 2009다26787 판결은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시공자선정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조합설립인가 이후 추인결의를 하였다면 유효하다는 취지로 판시하여 추인긍정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시공자선정이 이루어지는 경우 사업추진을 위한 금전대여약정이 별도로 이루어지게 되는바, 시공자로부터 자금차입약정을 하고 이에 대하여 조합임원들이 연대보증을 하였는데, 추진위원회에서의 시공자선정이 무효이므로, 금전대여약정 및 연대보증까지 무효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시공자선정행위와 금전대여약정 및 연대보증약정은 별개의 법률행위로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시공자선정행위가 무효라고 하더라도 금전대여약정 및 연대보증약정은 유효하다고 봄이 타당하고, 판례 역시 이러한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필자가 담당한 사안으로 추진위원회가 시공자선정과는 별도로 대여약정 역시 토지등소유자의 동의 내지 주민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지 문제가 된 사안에서, 대구고등법원 2020나226** 판결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추진위원회가 자신의 의무를 위반하여 그 운영규정에 ‘토지등소유자의 비용부담을 수반하는 것이거나 권리와 의무에 변동을 발생시키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동의 비율을 규정하지 않았을 경우, 추진위원회가 토지등소유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토지등소유자의 비용부담을 수반하는 것이거나 권리와 의무에 변동을 발생시키는 행위를 하면, 그 행위는 효력이 없다고 해석하여야 한다. 설령 구 도시정비법에 정한 토지등소유자의 서면동의가 요구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추진위원회 운영규정에 따라 주민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이 사건 추진위원회가 이 사건 대여약정 등에 관하여 적법한 주민총회 의결을 거쳤다고 볼 수 없으므로 그 효력이 없다.”

결국 시공자 등으로부터 차입하는 행위는 토지등소유자의 비용부담을 수반하는 행위에 해당하므로 토지등소유자의 과반수 동의를 득하거나 주민총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는 한 무효라고 하여, 연대보증약정까지 모두 무효라고 판단한 것이다. 토지등소유자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하여 그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절차를 보장하기 위한 입법취지를 고려할 때, 매우 타당한 판결이라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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