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음식남녀(飮食男女), 식(食)과 색(色)은 인생의 필수 모티프입니다. 그 둘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어디까지나 선택 요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깝게 지내는 직장 후배가 제게 물었습니다. “살아오면서 가장 좋았던 때가 언제였나요?” 생각이 필요 없는 질문이라서 바로 대답했습니다.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였지.” 살아오면서 그만한 열락(悅樂)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누려볼 수 없는 단 한 번의 호사이기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의 음식남녀에 아직 미련이 남아서인지 TV나 유튜브에서 음식 관련 영상들을 자주 보는 편입니다. TV에서는 유명한 식객들이 진행하는 프로를 자주 챙겨 봅니다. 동네 한 바퀴를 도는 프로, 전국의 맛있는 밥(백반)집을 순례하는 프로, 요리사 한 사람이 매주 한 명씩 손님을 초대해 한 상 차려 주는 프로가 요즘 제가 즐겨보는 것들입니다. 유튜브에서는 이웃나라의 노포(老鋪) 음식점을 소개하는 영상을 자주 봅니다. 주택가에 자리 잡은 소박한 가게에서, 평범하게 생긴 아저씨들이 우동이든 덮밥이든, 멋진 먹을거리를 뚝딱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노라면 활력과 행복의 호르몬이 팍팍 분비되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역시 음식남녀가 인생의 필수 모티프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에 발견한 게 하나 있습니다. 국내의 유명한 밥집을 찾아다니다 보면, 혹은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 끼니를 때우러 찾아 들어간 식당들을 보면, 십중팔구 거의 다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주방을 지키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음식을 주관합니다. 그런데 이웃나라 노포들을 보면 사정이 정반대입니다. 남자들이 주방을 지킬 때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젊어서 혼자되어 어린 자식들을 키워내는 수단으로 식당일을 하게 된 어머니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주방을 딸들이(간혹 아들도 있습니다) 이어받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 사연을 듣노라면 코끝이 찡해 옵니다. 그런데 이웃나라에서는 그런 스토리텔링이 별로 들리질 않습니다. 가업(家業)에 대한 자부심이 많이 강조됩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가 맞습니다. 뚜렷한 문화적 차이가 존재합니다. 작은 것 같지만 음식남녀가 인생의 필수 모티프인 점을 감안한다면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큰 의미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음식남녀(飮食男女)』(이안, 1994)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음식(조리)과 관련된 인간의 욕망과 그것의 존재론적 가치를 탐구하면서 인간사의 디테일(주로 남녀 관계)을 세필(細筆)로 꼼꼼하게 그려내는 영화입니다. 사람 좋은 홀아비 특급 요리사 주 선생과 어머니 없이 자란 방년(芳年)의 세 딸, 그리고 주 선생 주변의 ‘사랑을 기다리는’ 여인들이 합주하는 멜로드라마입니다. 화려한 요리 기술과 먹음직한 음식들,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는 미녀들의 사랑, 가족을 회복하고 유지하려는 눈물겨운 노력, 다양한 사건과 사물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극적 결말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갑니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결국 산다는 게 음식남녀일 뿐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먹고 마시는 것과 남녀의 정은 사람의 가장 큰 욕망이 머무는 곳(음식남녀인지대욕존언· 飮食男女人之大欲存焉)”이니 음식남녀에 사로잡히지 말고, 문화(文化)를 추구하라고 옛 성인들은 가르쳤습니다. 그래야 인간이 된다고 가르쳤지요.

성인의 말씀은 그렇지만, 인생 말년에 놓여 있는 저의 소감은 좀 다릅니다. 문화를 추구하라는 성인들의 말씀도 중요하지만 “남자는 역시 요리다!”라는 것을 부정하기 힘듭니다. 언감생심, 영화나 TV나 유튜브에 나오는 멋진 요리사나 식객들을 닮고 싶다는 말이 아닙니다. 저보다 훨씬 바쁜 집사람이 집을 비울 때에도 두려움 없이 부엌을 향해 돌진할 수 있는 자립적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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