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우리 아버지가 당선되면 나라가 망하고 낙선하면 우리 집안이 망합니다” 1950년 대말 이승만정권 시절, 국회의원 선거가 벌어진 경북의 어느 군 지역에 출마한 입후보자 아들이 단상에 올라 청중들에게 하소연한 발언이다. 당시 선거 유세장은 대게 초등학교 운동장이었다. 플라타너스 그늘이 드는 담벼락과 철봉 주변에는 으레 막걸리판이 벌어졌다. 보릿고개 시절 후보자가 주는 막걸리 한잔, 고무신 한 켤레에 표를 던진 건 배고프고 매몰차지 못한 우리네 인정이었다. 대한민국 선거의 흑역사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막걸리·고무신에서 현금 봉투를 거쳐 일명 선거용 교량·도로 건설로 이어졌다. 마을에서 도로를 잇는 10m 규모의 다리 공사가 완공되는 데 10년이 걸리기도 했다. 이제는 일시에 대중에게 파고드는 교묘한 포퓰리즘으로 발전했다. 5-60년대 그 시절에는 주고받는 사람들이 몰래 숨어서 했다. 선거법 위반에도 겁이 났겠으나 남에게 들키면 부끄러움 때문에 몰래 숨어서 했다. 그 런데 지금은 국민들 앞에 대 놓고 한다. 그것도 온 국민이 보는 매스컴을 이용한다.

서울·부산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국민 세금 28조원이 투입되는 것으로 추산되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둘러싸고 여야가 보인 매표(賣票) 행태는 한마디로 가관이다. 합법을 가장한 매표행위가 배가 산을 오르게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끌고 국민의힘이 밀어 국회를 통과시킨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발의된 지 3개월 만에 처리됐다. 국토부가 28조7000억원의 비용 추계를 내놓은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국토부·환경부·국방부 등 관련 부처도 가덕도신공항 건설에 우려를 표시했으나 모두 무시됐다. 여권 의원들 사이에서도 “동네 하천 정비도 이렇게 안 한다”는 탄식이 나왔을 정도로 문제점이 많음을 보였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되기 전날인 지난 2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에 내려와 가덕도에서 “신공항 예정지를 눈으로 보고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을 들으니 가슴이 뛴다”고 했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국토부 장관에게 “신공항에 국토부가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질책하고 “2030년 이전에 완공시키려면 속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부산시장 선거를 41일 앞두고 공항건설 현장인 가덕도에서 ‘선거성’ 발언을 이렇게 당당하게 할 수가 있나.

민주당과 정부는 4차 재난지원금을 15조원의 추경과 기존 예산 4조5천억원을 더해 총 19조5천억원으로 확정하고 4일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심사 과정에서 지급예산이 추가될 경우 4차 재난 지원금은 2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전 국민을 상대로 한 1차 재난지원금 14조원 보다 6조원이 늘어난 역대 최대 재난 지원금이다. 4차 재난지원금은 4·7 재보궐 선거 일주일 전인 이달말부터 지급이 될 전망이다. 지급대상자 수는 600만명에 이른다. 민주당과 정부의 돈 풀기 정책은 선거를 며칠 앞둔 가히 절묘한 시기에 지급일자를 맞추었다. 1차 재난지원금도 정부는 지난해 4·15총선을 12일 앞두고 지급안을 발표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라고 우길 텐가. 민주당은 광주 문화전당 건립 등에 사업비 5조3000억원과 위자료만 1조3000억원이 드는 제주 4·3특별법까지 가덕도 특별법과 함께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민주당과 정부는 올해 50조원 가까이 빚을 내 잔치를 열겠다는 것이다. 국민 세금을 제멋대로 살포해도, 말도 안 되는 법을 만들어도 이를 제어할 정치지도자도·사회지도층도 시민단체도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다행히 국민은 눈뜬 바보가 아님을 보여 주었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국회 통과에 대한 여론 조사에서 국민 53.6%가 ‘잘못됐다’고 응답했고 부산·울산·경남 지역민도 54%가 ‘잘못됐다’고 답했다. 이것이 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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