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 대표·언론인

청와대·정부·여당이 그물을 치고 집요하게 잡으려 했던 ‘범’이 실제로 그들 앞에 내려왔다. 범이 한번 ‘어흥-’하니 정치판이 소용돌이를 친다. 누가 먹고 먹힐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찌 됐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자들은 앞으로 범의 행보에 따라 발 뻗고 잠자기는 어려울 것 같아 보인다.

이번 주 들어 3개 여론조사 기관에서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2.4%, 28.3%, 29%로 모두 선두로 올라섰다. 여권의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를 큰 차이로 따돌리며 1위를 차지했다. 검찰총장직을 사퇴한 지 며칠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다. 내년 3월 9일 치러질 예정인 20대 대통령 선거를 꼭 1년 앞둔 시점에 벌어진 상황이다. 윤석열의 승부수는 극적이었다. 윤석열의 성공적 모노드라마의 연출자는 윤석열 본인이 아닌 문재인 정권이다. 윤석열은 문 대통령이 대리인으로 세운 추미애, 박범계가 밟으면 밟을수록 정치적 몸뚱이는 커졌다. 그의 수족을 자르고 여권이 그의 기반인 검찰의 손발마저 잘라내려는 순간 홀연히 뛰쳐나와 홀로 우뚝 섰다. 지금까지 윤석열의 정치적 성장은 문 정권이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그의 정치 활동은 그의 의지와 관계없이 차기 대선의 핵으로 떠올랐다. 앞으로의 정치적 성장은 윤석열 자신의 몫이다. 국민들에게 대선 주자 1위의 정치적 성적을 앞으로 어떻게 보여 줄지는 그의 역량과 안목에 달려 있다.

지금 정치판은 윤석열 쇼크로 여당도 야당도 혼돈 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다.

여당은 이낙연 전 대표가 지난해 한때 40%대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부동의 1위가 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작년 말에 이재명 지사가 1위로 치고 올라와 역전하며 지금까지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이 지사가 윤 전 총장을 압도할 만한 경쟁력을 보여 주지 못할 경우 여권 주류세력이 이 전 대표를 다시 밀어 올리거나, 이 전 대표도 경쟁력을 보이지 못하면 제3후보 물색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뚜렷한 대선 주자가 없는 야권에선 윤 전 총장의 부상을 반기는 분위기다. 김종인 국민의힘 위원장도 “윤 전 총장이 별의 순간을 잡았다”며 “이제 윤석열은 야권 인사”라고 껴안는 발언까지 했다. 그러나 앞으로 윤 전 총장 지지세 지속 여부와 제3세력화에 대한 불확실성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 무엇보다 대선 전초전으로 볼 수 있는 4·7 재보궐 선거 결과에 따라 여야의 대선판이 다시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승리한다면 야권의 구심력은 윤 전 총장으로 급격히 쏠릴 가능성이 높다. 야권 단일 후보가 승리한다면 누가 단일 후보냐에 따라 시나리오가 달라진다. 안철수가 승리하면 국민의힘 영향력은 급속도로 약화되고 안철수와 윤 전 총장 등이 포진한 ‘제3지대’가 야권 재편의 핵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안·윤간의 연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오세훈 후보가 단일화와 본선까지 거머쥔다면 윤 전 총장도 국민의힘 입당 권유를 뿌리치기 어렵게 된다. 대권 고지를 오르기 위해서는 서울시장까지 석권한 제1야당의 자금과 전국적 조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4월 선거 후 본격화될 대선 정국에서 어떻게 움직일지도 주요 변수다.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는 검찰총장’ ‘핍박받은 희생양’의 이미지가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지고 민주당이 추진해온 중대범죄수사청 법안도 미뤄지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언더도그 효과’도 비례해 얕아질 수밖에 없다. 윤 전 총장이 이 공백을 어떻게 메워 나가며 지금까지 보여온 집권세력에 맞서온 맷집과 뚝심, 정의와 법치의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인으로서의 의지를 어떻게 펼치느냐에 따라 정치적 명운이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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