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무엇이든 많아지고 흔해지면 가치도 그만큼 떨어진다. 보석이 값지고 귀한 것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우선 양이 적고 희소하기 때문이다.

말도 그렇다. 쏟아낸 말이 많으면 그 말에는 쓸 말이 적고 들을만한 가치도 없어진다. 말에 대한 관리나 책임을 지는 것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늘 말이 앞서다 보니 실언이나 말의 모순도 잦아진다.

말이 많은 편인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자주 말을 걸고 묻는 말에 대답을 잘 해주는 다정다감한 사람들도 있다. 또, 좌중에서 늘 말문을 열어가면서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도 자주 본다. 이런 경우라고 한다면 말 많은 것이 오히려 장점이자 강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경우가 아니라 늘 필요 이상 많은 말을 하거나 쓸데없는 말까지 많이 하는 경우다. 이른바 ‘빈 수레’나 ‘허풍쟁이’도 당연히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상대방이 듣기 힘들어하고 지겨워하는 눈치를 줘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잣말을 늘어놓는다.

과하면 넘치듯 결국 말도 많아지면 실수나 실언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과장이나 허풍 떠는 것을 넘어 안 해도 될 남의 말도 하게 되고 험담이나 흉도 보게 된다. 뱉은 말은 결코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이런저런 말 때문에 후회해 봐야 소용없고 근심만 쌓여 간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리게 되므로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보다 못하다’(多言數窮 不如守中)고 했다. 그래서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함부로 지껄이거나 떠들어 대지 않고, 말이 많고 떠드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知者不言 言者不知)이라고도 했다. 순자도 ‘군자는 말은 적지만 이치에 맞고(少言而法) 소인은 많은 말을 하는데 이치에 맞는 것이 없다’(多言無法)고 했다.

물론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될 수도 없다. 치열한 경쟁을 겪으며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는 ‘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 잃어버린 나의 얼굴’이 되지 않기 위해서도 침묵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 말도 해야 하고 주장도 해야 하지만 단지 필요 이상의 많은 말이 문제일 뿐이다.

과연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얼마나 많은 말을 듣는 것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은 상대방과 주고받는 것이므로 하루에 듣는 말이나 한 말이 대충 서로 비슷하리라는 짐작이 간다. 물론 여기서는 일이나 업무적으로 한 말들은 당연히 제외다.

일상에서 봤을 때 매일 말하는 양이 듣는 양보다 많아 보이는 사람은 말이 많은 편에 속하게 된다. 반대로 보이면 과묵하거나 말수가 적은 사람으로 여겨지게 된다. 하루 한 말이 들은 말보다 많으면 말을 잃은 것이고 침묵으로 들은 말이 더 많으면 그만큼 말을 번 셈이다.

말도 돈처럼 은행에 저축하고 찾아야 쓸 수 있는 것이라면 말은 인출이요 침묵은 저축인 셈이다. 말이 많다는 것은 말의 낭비가 발생하는 것이고 침묵은 예금이나 투자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매일 저축 없이 낭비만 한다고 가정하면 결과는 처참한 패배나 파탄일 뿐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매주 월요일을 침묵의 날로 지냈다고 한다. 그는 늘 침묵을 실천하며 ‘먼저 생각하라. 그런 뒤에 말하라. 이제 그만하라는 말을 듣기 전에 그쳐라’고 말했다. 말을 아끼고 저축하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인다.

결국 말이 많다는 것은 결정적 약점이고 허점이다. 이제 말 많은 사람은 누구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는 약점과 허점투성이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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