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뜬금없이’라는 말이 있다. 옛날 읍내에는 5일마다 장이 섰고, 소나 돼지 같은 가축과 농산물을 이 장에서 사고팔았다. 농산물은 공산품과 달리 일정한 가격이 없으므로 흥정하여 금을 매기고 값을 정한다. 흥정하여 값을 매기는 것을 ‘뜬금’이라 한다. 일정하지 않고 시세의 변동에 따라 그날의 장판에서 정해지는 값을 말한다. 뜬금 없이 라는 말은 ‘장마당에서 공론화되어 매겨진 값도 없이’란 뜻으로 보통 사람들이 분위기나 주제에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쓰는 말이다. 전혀 예상 밖의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쓰는 말이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도 비슷한 경우에 쓰인다. 전혀 관계없는 얼토당토아니한 소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옛날 흙벽돌집에 문틀 없이 그냥 창문처럼 구멍을 내어 종이만 발라놓은 것이 봉창이다. 빛이 투과되어 들어오는 창인데 잠결에 구분 못 하고 문 인줄 알고 더듬거리다가 내는 소리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 것이다. 번지수 잘못 짚고 헛소리하는 소리, 상황에 맞지 않는 엉뚱한 소리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다.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가 있다. 씨 나락은 다음 해를 기약하는 씨앗인데 이것을 먹어버리면 내년에 농사지을 씨앗 자체가 없어지니 농사꾼은 굶어 죽을지라도 씨 나락은 베고 잔다고 한다. 이렇게 소중하게 간직했던 나락 씨앗을 이듬해 못자리에 뿌렸는데 잘 나지 않자 농부가 귀신이 씨 나락을 까먹고 쭉정이만 남았다고 말했단다. 그 말도 안 되는 소리가 “귀신이 씨 나락을 까먹었다는 소리”라는 것이다. 귀신인들 씨 나락을 까먹어버리면 다음 해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고, 농사를 못 지으면 제삿밥도 못 얻어먹을 것을 뻔히 아는데 귀신이 씨 나락을 까먹을 리가 없고, 귀신은 무슨 귀신 헛소리라는 것이다.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다.’는 말도 있다. 잠결에 남의 다리를 긁는다는 뜻으로 다른 데 정신 팔고 있다가 엉뚱한 행동이나 말을 한다는 뜻이다.

재미있는 말에 ‘뚱딴지같은 소리’가 있다. 상황이나 이치에 맞지 않게 하는 엉뚱한 행동이나 말을 가리킨다. 우둔하여 상황판단을 잘 못하는 사람을 뚱딴지라고 하지만 돼지감자의 별칭이다. 돼지감자가 모양도 크기도 무게도 제각각이라 ‘뚱딴지’라 했다는 설과 잎이나 꽃은 감자를 전혀 닮지 않았는데 뿌리에는 감자가 달리니 엉뚱한 감자라고 하여 뚱딴지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이눌린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천연 인슐린’으로 당뇨환자들이 애용하는 존재가 되었다. 밭두렁이나 시냇가에서 뚱딴지 돼지감자를 캐서 허기를 달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뚱딴지같은 소리, 뜬금없는 말,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행위,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 등은 모두 비정상적이고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이나 행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일상에 매몰되어 지친 삶을 얼토당토않은 말과 행동이 풀어줄 때가 있다. 코미디에서 ‘뚱딴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로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정상에서 일그러지는 말이나 행동이 코믹인 것이다. 뚱딴지 돼지감자가 당뇨 환자에 약이 되듯이 엉뚱한 말이나 행동이 신선한 웃음을 줄 때가 있다. 팍팍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활력소가 된다는 말, 비정상으로 정상의 고달픔을 치유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코미디언도 아닌, 명색이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뜬금없는 말,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면 피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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