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세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사무총장·서경대학교 광고홍보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진세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사무총장·서경대학교 광고홍보콘텐츠학과 겸임교수

미국 가수 사이먼과 가펑클이 1970년 발표한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콘도르는 날아가고)를 기억하는 독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플루트 소리를 내는 잉카의 피리 연주에 두 가수의 아름다운 보컬이 얹어진 곡이다. 원래는 페루 원주민 민요다.

콘도르는 매과에 속하는 맹금류다. 맹금류 가운데 가장 크다. 날개를 활짝 펴면 2미터를 훌쩍 넘긴다. 안데스 고산지대에 마추픽추라는 고대 도시를 건설했던 잉카인들은 콘도르를 신처럼 숭배했다. 잔인한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스의 가혹한 탄압에 저항하면서 그들은 콘도르에서 자유와 승리를 보았을 것이다. 잉카인들이 축제 때 콘도르를 ‘귀빈’으로 모신 후에 다시 날려 보낸 이유다.

문제는 이 귀빈을 모시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콘도르는 큰 몸집 탓에 쉽게 날아오를 수 없다. 자연 경계심이 강하다. 웬만해서는 땅 가까이에 잘 오지도 않는다.

방법은 있다. 사실 매우 간단하다. 콘도르의 욕망을 이용하는 것이다.

먼저 한적한 고지대를 선택한다. 풍족한 먹이를 이곳저곳에 배치한다. 그리고 숨어서 끈기 있게 기다린다. 시력이 5.0이나 되는 눈 밝은 콘도르는 풍성한 먹이를 한눈에 알아본다. 다소 미심쩍어도 그는 결국 착륙한다. 먹이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가.

안전을 확인한 콘도르는 허리띠를 풀고 포식한다. 위험 발생 시 즉각 날아오르려면 적당히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한 입만, 두 입만 하다가 결국 과식한다.

욕망의 ‘절친’은 재앙이다. 배가 산처럼 부푼 콘도르는 사냥꾼들이 다가오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날아오르지 못하고 허무하게 생포된다.

중국 남부 지방의 원숭이 생포 요령도 콘도르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목이 잘록한 유리병 속에 사탕 몇 개를 넣어두기만 하면 된다. 원숭이는 병 속에 손을 넣어 사탕을 한 움큼 집는다. 주먹 쥔 손을 빼낼 수는 없는 법. 사냥꾼이 다가온다. 이때라도 사탕을 놓으면 손을 빼내 도망칠 수 있으련만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상당수의 원숭이는 주먹을 펴지 못한다. 사탕의 유혹을 어찌 이기겠는가. 콘도르는 생고생하는 정도로 끝나지만 잡힌 원숭이들은 죽음으로 욕망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과욕은 공자도 싫어했다. 제자 자장(子張)과 자하(子夏)를 평가하면서 지나친 자장보다는 못 미치는 자하가 낫다고 말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과욕은 대개 재물이 대상이다. 성경도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라고 가르친다.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간다”고도 경고한다.

중국 현자(賢者)들은 욕속(欲速)이란 표현을 썼다. 욕심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욕심을 이루는 속도에 주목한 것이다. “욕심이 급하면 이르지 못한다(欲速而不達)”고 경계한다.

LH사태로 온 나라가 소란하다. 이들의 욕망은 실로 끝이 없다. 내부정보를 악용한 투기도 모자라 묘목 심기, 필지 쪼개기 등의 ‘고난도 기술’을 동원해 부수입까지 챙기는 성실함(?)을 보였다. LH 직원들뿐이겠는가. 단체장, 국회의원 등 상당수의 정치인도 연루됐다.

‘염일방일(拈一放一)’이란 말이 있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놔야 한다는 얘기다. 보리 한 줌을 움켜쥔 사람은 쌀가마를 들 수 없다. 욕망 한 줌을 움켜쥐면 인생이란 쌀가마는 놓치고 만다. 인생을 날린 사람들의 뒤늦은 탄식 소리가 들린다. 우리 모두의 반면교사들이다. 욕망의 행진을 멈추자.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