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토지조사사업에 관한 법적 연구’

배병일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일제가 실시한 토지조사사업을 추적해 왜곡된 법리와 법적 쟁점을 연구한 결과물인 ‘일제하 토지조사사업에 관한 법적 연구’(영남대학교 출판사)를 발간했다.

이 책은 1912년부터 1918년까지 일제가 실시한 토지조사사업의 전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해 왜곡된 법리와 법적 쟁점을 연구한 책이다.

일제는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을 계기로 국민의 소유권을 비롯한 재산권을 왜곡해 수탈했다. 토지조사사업에서의 수탈과 부당함에 대한 우리 국민의 법적 소송을 조선고등법원판결을 통해 왜곡을 정당화했다. 그럼에도 해방 후 우리 대법원은 토지조사사업의 전 과정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왜곡된 일제하 조선고등법원판결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토지조사사업 전 과정에서 일어난 법적 문제점을 검토한 저자의 연구는 조선고등법원판결을 답습하고 있는 대법원판결의 법리를 변경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나아가 그동안 토지조사사업에 대해 역사학, 사회학, 경제학 분야에서의 연구는 많았지만, 법학 분야에서의 연구는 부족했기에 이를 보완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큰 의미를 지닌다.

일본은 1910년 한일합방 후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1912년부터 1918년까지 토지조사사업, 1918년부터 1935년까지 임야조사사업을 실시해 지세수탈을 위해 제도를 정비했다. 종래와 같은 허술한 징세체제로는 조선총독부 운영에 필요한 세금 수입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수취체제의 바탕이 되는 근대적 토지제도를 도입했다. 조선총독부에서 실시한 토지의 사정은 토지소유자와 경계를 확정하는 행정처분이기에 절대적인 효력을 지녔고 대법원은 이를 원시취득이라고 했다. 이 두 사업으로 우리나라에 지적도, 토지대장과 임야대장, 등기제도가 도입됐다. 이때 만들어진 지적도, 대장과 등기가 지금까지 사용되면서 토지정보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지적재조사사업을 실시하고 있기에 이 책은 토지 제도의 역사와 흐름, 방향을 잡아가는 데도 시사점을 던진다.

토지조사사업을 일본은 근대화를 위한 사업이라 주장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수탈적, 박탈적 사업이었다.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의 토지신고를 받으면서 소유자 확인을 위한 근거장부로 결수연명부를 이용하면서도 토지사정이라는 절대적 효력을 통해 종전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종전의 소유권을 전제로 소유권을 사정(査定)하면서 종전의 소유권과 단절된 새로운 소유권을 창출하는 것은 모순이었다. 또한 토지조사사업과정에서 종중재산에 대해 등기조차 할 수 없도록 했고, 해괴한 명의신탁법리를 창출해 종중의 경제적 기반을 박탈했다. 마을재산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물권적 입회권을 부정하다가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자, 부득이 양여 등을 통해 부활시켰다. 저자는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의 과정에서 일으킨 법리적인 모순들을 세세하게 비교 검토하고 있다. 이 책은 향후 일제가 남긴 토지 관련 법리들을 바꾸어가는 데 소중한 자료가 된다.

저자 배병일 교수는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5년부터 국립 강릉원주대학교 법학과 부교수를 거쳐 1992년부터 영남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를 지냈다. 1997년 미국 와싱턴주립대학(WSU)과 2007년 미국 올드 도미니언대학(ODU)에서 교환교수를 했다.

현재 영남대학교 특임부총장과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근무 중이다. 영남대학교 법과대학장, 법학전문대학원장, 대외협력처장, 중앙도서관장을 역임했고, 한국법학교수회장,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장을 역임했다. ‘광해로 인한 민사적구제에서의 문제점’ 외 160여편 연구논문과 ‘물권법요해’, ‘물권법’, ‘명예훼손소송과 오신의 상당성’등 14권의 저서가 있다.

곽성일, 김윤섭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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