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씨앗 창고
지구촌 인류 식량의 미래와 작물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시리도록 춥고 황량한 북극에 세워진 ‘국제종자저장고’가 있다.

이 ‘국제종자저장고’에 대한 ‘세계의 끝 씨앗 창고’(캐리 파울러 글, 마리 테프레 사진, 허형은 옮김, 마농지 출판사)가 출간됐다.

인간이 거주하는 곳 중 북극점에 가장 가까운(북위 74~81도)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제도. 면적의 60%가 빙하이며 1년에 77일은 극야, 127일은 백야가 이어지는 곳. 이 스발바르에서도 외딴 바위산에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Svalbard Global Seed Vault)’가 있다.

영구동토층 암반에 130m의 터널을 뚫고 지은, 소행성 충돌에도 견딜 내진설계와 5중 잠금장치에 영하 18도가 유지되는 이 요새는 전 세계의 종자를 보관하는 시설이다. 자연재해와 (핵)전쟁, 테러… 무엇보다 기후위기로 인한 식물 멸종에 대비해 인류의 먹거리와 작물다양성을 보호하는 ‘씨앗 방주’로, ‘종말의 날 저장고’라고도 불린다. 세계 각국에서 맡긴 100만 종 이상 5억 개가 넘는 종자 샘플을 보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북한도 이곳에 씨앗을 보냈고, 2015년에는 시리아 내전에 의한 종자 손실로 설립 후 첫 종자 반출이 있었다.

마법처럼 아름답지만 뼈가 시리도록 춥고 황량한 곳에 왜 거대한 씨앗 창고가 지어졌을까? 불가능해 보였던 프로젝트는 어떻게 현실이 되었을까? 어디서 온 어떤 종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보관돼 있나? 이 종자들을 보존하는 게 왜 중요한가? 이곳은 어떻게 이용되고 무엇을 성취할까?

‘세계의 끝 씨앗 창고’ 는 아이디어 단계부터 건립과 운영까지 저장고의 모든 과정을 이끈 캐리 파울러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는 책이다. 파울러는 첫 삽을 뜬 순간부터 완공까지, 녹색 판유리들이 반짝이는 입구에서 냉각장치가 가동되는 보관실까지, 그리고 운영 방식과 재정 구조 등 빙하의 절경 한가운데 자리한 저장고의 구석구석과 그 안팎에서 분투해온 ‘사람’들의 모습을 생동감 넘치는 문체로, 서사가 있는 이야기로 재현해냈다.

다가올 위기에 대비해 ‘뭐라도 해보려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지어 올린 씨앗 창고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작물다양성 보전’을 향한다.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종자 획일화와 기후변화는 식량 위기와 생태계 위기를 불러왔다. 이 책은 인류는 자연에 전적으로 의존하거나 자연을 압도해서는 안 되며, 농업의 토대이자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인 작물다양성을 지켜내야 한다고 호소한다. 소실되고 있는 작물다양성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으며,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는 인류의 절박한 현실에 대한 우아하고 실용적인 대응이다.

“스발바르 종자저장고의 사명은 우리 농작물의 다양성을 영구히 보호하는 것이다.”

오늘날 인류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같은 작물을 재배하고 같은 품종을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 이후 육종법 개발과 농업의 세계화, 기업화가 작물다양성 소실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FAO에 따르면 20세기 동안 세계 작물 품종의 75%가 사라졌다. 일부 핵심 작물, 단일 품종의 지배력이 커지고 유전자 기반이 점점 더 협소해지고 있다.

다양성이 사라지면 위기에 취약해진다. 더욱이 기후변화는 농업 생산 시스템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불확실성과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금세기 중반 90억에 도달할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을까? 파울러는 작물의 진화, 환경에 대한 적응은 작물다양성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즉 더 온난해진 기후에 적응하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병충해에 맞설 새 품종을 만들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종자 표본, 그 안에 함유된 유전자 형질에 달려 있다. 씨앗은 문명의 토대이며, 작물다양성은 농업의 토대이자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최대한 많은 작물다양성을 보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스발바르 종자저장고를 통해 다양성을 지속적으로 보전하는 일은 작물과 식량 안보 그리고 이 세기와 다음 세기에 지구에서 살아갈 인류 모두에게 필수적인 과업”이 됐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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