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지난 3월 16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21세의 로버트 애론 롱이라는 백인 남성이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8명이 사망하였고, 그중 6명이 아시아 노동자였다. 지난 16일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아시아계 6명 등 8명이 숨진 애틀랜타 총격 사건 이후 경찰은 범행 동기가 ‘성 중독’일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경찰의 발표가 백인 남성 범인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범행 동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체로키 카운티 보안관실의 대변인 제이 베이커는 롱이 인종차별에 따른 증오범죄는 아니며 자신이 성 중독에 시달리고 있고 “유혹을 떨쳐내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더군다나 대변인 베이커는 또 롱이 “매우 나쁜 하루를 보낸 이후에 저지른 일”이라고 덧붙이기까지 하였다.

치명적인 비극 직후 나온 경찰의 이러한 발표는 대중의 분노 특히 아시아계의 분노를 촉발하였으며 이후 대변인 베이커가 페이스북에 중국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관련성을 암시하는 논란의 글을 작성하기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분노는 더욱 커졌다.

미국의 경찰과 교묘한 법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21세 백인 청년의 성 중독과 죄의식에서 비롯된 성범죄로 애써 사건의 정치 사회적 의미를 축소 왜곡하고 있다. 최근의 관련 보도를 종합해 보면 로버트 애론 롱이 아시안 증오 범죄로 기소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정치적으로는 바이든의 방문과 담화, 주지사들의 성명 발표가 잇따랐지만 실상 사건의 구체적 법적 책임을 묻는 절차는 철저하게 왜곡되고 사망자들에게도 은연중 도덕적 책임을 묻는 비겁하고 악랄한 백인만의 사법적 정의와 인권 절차로 졸속 마무리될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인권 후진국에서 보여주는 적나라한 반인권적 사건에 대해 끊임없이 비난하고 제재의 칼날을 내미는 미국이 실상 자기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교묘한 정치 사법적 권력과 절차적 기술로 유야무야 시켜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번 사건이 인권적 쟁점을 억압하고 왜곡하기를 반복하는 수도 없는 사례의 하나로 다시 기독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백인 남성인 범인이 처음부터 여성 아시아인들이 종사하는 업소를 겨냥하였다는 점에서는 이는 명백한 아시안에 대한 증오 범죄를 증명하는 정황적 증거이다. 또한 코로나 19 확산 이후 미국 내 아시안 증오 정서가 급속하게 확산되어 왔고, 증오범죄지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미국 정부나 경찰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는 우연한 사건이 아닌 사회적 재난이다.

Stop AAPI Hate (미국 시민단체)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지난 1년간 미국 거주 아시안 대상 혐오 범죄가 급증하여 46개 주에서 총 3795건, 하루 평균 11건의 혐오범죄가 발생하였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관련해 아시아계 주민에 대한 차별적 언사들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말했다는 사실과 공화당 인사들의 인종주의적 선동 발언이 뒤따르면서 아시안에 대한 혐오가 급속도로 번져나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충격적인 것은 보고서에 따르면 증오범죄를 경험하는 사람 중 여성이 68%로 남성에 비해 2.3배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 내 아시안, 그중에서도 여성들이 차별과 증오 범죄에 얼마나 취약한가를 또한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범행이 일어난 조지아주뿐만 아니라 미국 내 많은 주에서 증오범죄 처벌법이 제정되어 있지만 증오범죄가 범행 동기를 다룬다는 점 때문에 증오범죄 협의 적용은 거의 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증오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에 현재의 법은 그 실효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아시아인에 대한 범죄에 있어서는 ‘반 아시아계 상징’이 없다는 점 때문에 유독 증오범죄 적용이 되지 않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과 피해가 늘어가고 이번 총기사건을 통해 아시아인들이 겪을 공포와 고통이 더욱 가중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서의 법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하여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미국 내 경찰의 언행으로 인해 증오범죄를 겪어도 신고를 기피하는 경우도 많다. 아시아인들이 증오범죄에 노출되더라도 경찰이 유색인종을 얼마나 가혹하게 대하는지 너무나 잘 알기에 문제가 더 커지거나 오히려 피해를 입을까 신고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고, 더 심한 폭력을 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개혁 없이 애도만 남발하는 미국 정부와 경찰의 근본적 성찰과 반성을 요구한다. 미국 정부와 경찰이 자각과 반성 그리고 개혁이 없다면 사실상 바이든 정부도 증오범죄에 대한 해결 의자가 없는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미국 내 아시안 증오범죄의 악몽은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반복되는 총기사고,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혐오범죄, 특히 코로나 이후 아시안을 피해의 희생양으로 삼는 파시스트적인 태도로 희생된 한국계 여성을 포함한 희생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그리고 미국사회가 로버트 애론 롱을 성범죄가 아니라 증오 범죄로 기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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