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 전 언론인
이상원 전 언론인

야권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를 통해 오세훈을 야권 단일후보로 결정했다. 이러한 선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끌며 국민적 관심을 받았던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대선 지지율에서 크게 앞섰지만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패배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1000여 표본의 여론조사가 두 사람의 운명과 당대의 정치사를 쥐락펴락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언제부턴가 선출직 후보 결정에 여론조사 방식을 도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여론조사는 사실 참고자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치권의 고육지책일지 모르나 그 본래 취지를 한참 벗어나 후보를 결정짓게 하는 것은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여론에 앞섰던 후보가 공직마저 잘 수행했다면 결과적으로도 최선의 방식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허다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이 권력기관’이라는 볼멘소리가 정치권에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대부분 여론조사기관들이 민주당 힐러리의 승리를 장담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공화당 트럼프가 승리했다. 트럼프 지지율이 여론조사에 반영되지 않은 ‘샤이트럼프’ 현상 때문이었다. 이후 우리나라 여론조사에서 샤이트럼프에서 유래된 ‘샤이보수’라는 말이 나왔다. 샤이보수란 보수성향의 유권자들이 조사에 응답하지 않거나 응답 시에도 성향을 숨기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런데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뜬금없이 ‘샤이진보’란 말이 등장했다.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자당 후보가 열세를 보이자 여당은 샤이진보가 존재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입장이 바뀌면서 여당은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샤이진보까지 동원해야 하는 딱한 처지가 되었다. 설령 샤이진보가 일부 존재한다 해도 결과를 뒤집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권력이 오만했을 때 보아왔던 우리 정치사의 흔한 장면이자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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