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극원 대구대학교 법학부 교수·전 한국헌법학회 회장
정극원 대구대학교 법학부 교수·전 한국헌법학회 회장

능수버들의 하늘거림을 봅니다. 문득 어릴 적의 천진난만에 젖어봅니다. 노란 겨울 잔디위로 뒹구는 것만으로도 까르르 웃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봄볕이 내려 하늘은 높고 맑습니다. 땅은 낮추어 평지를 만들고 따스합니다. 갓 심은 소나무는 가녀렸을지라도 푸름입니다. 소나무의 본성이 그러한 것입니다. 소나무의 여린 가지와 잎은 보살피지 않아도 자라나고, 세월을 더하는 만큼 나이테를 두릅니다. 켜켜이 세월이 쌓여 두꺼워지는 껍질입니다. 두껍게 하여서 세찬 풍파를 견디어내는 것입니다. 꾸밈이 없습니다. 어린아이의 깔깔 웃는 모습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눈치를 보고서 웃는 것이 아니고 느낌이 가는 대로 웃는 것입니다.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에 더 비중을 두라는 본성이 시키는 명령인 것입니다. 소나무는 세월을 더하여 두꺼워지는 것이지만, 어린 천진난만에는 세상의 풍파가 배여들 여지가 없습니다. 순진무구하여 때가 끼어들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노란 잔디가 제법 파릇파릇 여린 잎을 돋아내고 있습니다. 앳된 모양입니다. 동심이 그런 것인가 봅니다. 사소한 것에도 감동을 하는 것입니다. 손에 무엇을 움켜쥐는 것에 익숙한 것이 아니라 손에서 비워내는 것에 더 친하여져 있습니다. 숲에서는 잡초란 없는 것입니다. 돋아난 풀은 비록 그 이름은 없을지언정 생명으로서는 다 고귀한 것이니 잡초는 아닌 것입니다. 숲에 잡목이 어디 있으며 또한 잡초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삶에서 애처로움이 느껴지고 사는 것이 애절함일 때에 생각하는 것에는 잡생각은 없는 것입니다. 흩어져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집중하여 몰두하는 것입니다. 간절할 때에는 그 어떤 생각도 그 어떤 바람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간절히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 이유입니다.

능수버들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해빙을 알아낸 것입니다. 땅 밑의 기운까지도 감지하고서 가지 끝에도 물을 뿜어 올린 결과입니다. 축 늘어뜨린 가지는 얕은 바람에도 과격한 흔들림을 만듭니다. 그 흔들림의 펌프질을 통하여 가지마다 수분을 닿게 하는 것입니다. 흔들림이 뿌리를 깨우고 잎의 수분을 증산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륙할 때에 요란하였기에 창공에서 고요하게 비행하는 비행기입니다. 출발할 때에 이리저리 흔들림이 있었기에 망망대해 바다에서 평온한 항해를 하는 배입니다. 삶에 난관이 닥친다 하여 체념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서기 위한 잠시의 흔들림에 불과한 것입니다. 어둠에 잠긴 까만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빛이 내립니다. 밤길을 걸어야 하는 나그네에게는 길라잡이가 됩니다. 별똥별 하나가 빛을 반짝이며 빗금처럼 사선을 그으며 사라지는 것도 볼 수가 있습니다. 별똥별을 보면서 숱한 꿈을 꾸었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까만 하늘이었으니 별똥별이 더욱 반짝였습니다. 사라지는 그 빛을 보고서도 희망을 꿈꾸었던 것입니다. 반짝임이란 어느 곳에서라도 희망을 쏘아 올리는 계기가 됩니다. 하물며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으로도 세상을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길을 걸으면서 애꿎은 돌부리라도 툭툭 차면서 걷는 것도 방법이 됩니다. 발로 찬다고 하여 돌부리가 파일 리도 없겠지만, 괜히 그렇게 건드려서 마음에 작은 위안을 찾을 수 있다면 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능수버들이 하늘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절망을 걷어차 내고 희망을 향하여 뛰라는 손짓 같은 것입니다. 능수버들을 흔든 봄바람조차도 고마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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