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화철 한동대 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경기는 나쁘다는데 주가는 높기만 하다. 2020년 3월 19일 종가 기준으로 1,457.64를 기록했던 코스피 지수가 3,000을 넘나든다. 작년 초 주식을 사서 올 초에 판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었다. 아파트값도 엄청 올랐다. 폭등 전에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산 사람은 흥했고, 뒤늦게 부랴부랴 ‘영끌’한 사람은 불안할 것이다. 자기 땅이 개발 예정지가 되어 부자된 이들도 있는데, 최근 개발 관련 정보를 아는 공무원들이 땅을 사 두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정권이 날아갈 판이다. 그런데 그들이 땅 짚고 헤엄칠 동안 개발예정지라는 말에 속아 재산을 날린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몇 년 전 젊은이들 피눈물을 앗아간 비트코인은 갑자기 또 살아나서 몇 배로 값이 올랐다.

누군가 현대 자본주의를 ‘카지노 자본주의’라 불렀다는데, 아니게 아니라 2021년 봄 대한민국에서 장삼이사가 주식과 비트코인, 아파트와 땅에 투자하는 것은 도박과 비슷해 보인다. 우선 뚜렷한 승리의 비결이나 실력보다 내가 좌지우지할 수 없는 변수나 운이 많은 역할을 한다. 물론 경험과 이론이 쌓이면 땅과 주식을 보는 눈이 달라지니까 모든 게 행운에 달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건 도박도 마찬가지다. 잘만 되면 들인 노력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수익이 생기고, 잘못되면 들인 돈에 비해 너무 큰 손실이 나는 것도 비슷하다. 좋은 주식을 고르느라 애를 썼다지만 그게 투자금의 몇 배만큼의 가치를 인정할만한 노동이었다고 하기 힘들다. 똑같은 노력을 들여 산 주식의 값이 외국에서 누군가 사기를 치는 바람에 반 토막 났다면 억울한 일이다. 여윳돈을 사용해야지 빚을 내서 하면 위험하다는 것도 비슷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라 자산을 늘리려는 합법적인 노력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 투기적인 고위험 투자와 도박 사이의 차이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것에 주목하고, 이들과 관련해서 일관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카지노에 가는 것이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투기성 투자나 과도한 이익을 취하려는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고위험 고수익의 과감한 투자를 해서 돈을 벌어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도박하는 사람도 무시하면 안 된다. 무엇보다 도박하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듯이 투자로 먹고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굳이 흉내 낼 필요는 없다. 자본주의를 받쳐주는 궁극의 재화는 결국 묵묵히 일하고 저축하는 노동자의 손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나아가, 누구도 “나는 카지노에 가지만 너는 안 된다”고 말할 권리가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같은 이유에서 “나는 투자를 할 테니 너는 하지 말라”는 식의 접근이나, 누구는 경제인이니 투기성 투자를 해도 되지만 누구는 공무원이니 안 된다는 식의 접근은 곤란하다. 정치인도 휴일에 카지노에 갈 수 있고, 카지노 직원도 옆 카지노에 가서 도박을 할 자유가 있다. 그렇게나 자유를 중시한다면서 왜 남의 자유에는 그렇게 쉽게 입을 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기본 원칙이 정확하게 지켜지는 것을 전제한다. 주식시장이건 주택시장이건 공평한 행운의 규칙이 작동해야지, 공개되지 말아야 할 정보를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일이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카지노에서도 승률 조작이나 속임수가 엄격히 금지되듯이 말이다. 바로 이 대목이 아쉽다. 영화를 보면 카지노 뿐 아니라 불법 도박장에서도 속임수를 쓴 사람은 무시무시한 대가를 치르는데, 과연 요즘 우리의 시장이 그 정도 공정성이라도 확보했는지 모르겠다. ‘카지노만도 못한 자본주의’라 해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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