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별의 순간’이 떴다. 국민의힘을 진두지휘해온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그동안 이 말을 자주 쓰면서 이제는 유행어가 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 출마가 여전히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가운데 김종인 위원장은 올 초부터 윤 전 총장을 향해 “별의 순간”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김 위원장은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별의 순간’은 한 번밖에 안 온다”, “별의 순간을 제대로 포착하느냐에 따라 국가에 기여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현 정부와 대립해오던 윤 전 총장이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전격 사퇴하자 그는 다시 윤 전 총장을 향해 “별의 순간을 잡은 것 같다”, “준비만 잘하면 별을 딴다”는 덕담을 이어갔다.

‘별의 순간’은 슈테른슈툰데(Sternstunde)라는 독일어에서 나온 말이다. 별(stern)과 시간(stunde)이 더해진 의미다. 독일어권에서는 미래를 결정하는 ‘운명의 순간’의 비유적 표현으로 자주 사용한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젊은 시절 독일 뮌스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독일 유학파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자주 사용한 그 말의 연원은 쉽게 짐작이 간다.

‘별의 순간’은 별이 갖는 상징이 워낙 강하다 보니 이 말의 흡인력이나 울림은 다른 어떤 말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도 경쟁적으로 인용하고 사용하는 말이 됐다. 이 말은 또한 정치적 꿈과 같이 큰 꿈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자신에게도 물음을 던지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나의 ‘별의 순간’은 언제인가?” “지나간 것인가 다가오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에게도 묻고 답하게 만든다. 나이 든 사람들은 자신의 ‘별의 순간’이 이미 지나갔다고 인정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저마다 지금이 별의 순간이거나 아니면 곧 그 순간이 다가오길 간절히 기대한다. ‘별의 순간’이 지닌 상징과 연상의 힘이 이토록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별의 순간’을 말한 김종인 위원장은 윤석열 전 총장을 향해 “별을 따기 위해서는 몰려드는 ‘파리’를 조심하라”는 충고도 했다. “파리를 어떻게 자기가 잘 골라서 치울 건 치우고 받을 건 받고 그것을 어떻게 앞으로 능숙하게 잘하느냐에 따라서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고 했다.

‘파리’가 누구인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김 위원장의 말로 인해 앞으로 윤 전 총장의 행보에 걸림돌은 언론 등이 ‘파리’로 규정할지도 모른다. 누구나 정치적 행보에는 헤쳐나가야 할 여러 난관과 과제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장애물과 마이너스 요인들을 김 위원장은 한마디로 ‘파리’로 함축하고 설정한 것이다.

정치인들의 말은 원래 상징과 이미지가 강한 편이지만 근래에는 김종인 위원장만큼 상징이 강한 언어구사도 없는 것 같다. 내년 대선과 관련해 연초부터 내놓은 ‘별의 순간’과 최근의 ‘파리’란 표현이 대표적이다.

‘별의 순간’은 타이밍과 선택인 동시에 대권으로 나아감이며 ‘별’은 대권의 획득이다. ‘파리’는 극복해야 할 여러 난관들을 의미한다. 결국 대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민의에 조응하며 위기를 타개하고 끝까지 흔들림 없는 동력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함의한다.

윤 전 총장이 대권가도를 달리게 될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쏘아 올린 ‘별의 순간’이란 희망 메시지의 가장 큰 수혜자임은 분명하다.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와 함께 ‘별의 순간을 맞은 인물’이란 상징을 윤 전 총장이 선점해 앞으로 확고히 다지게 된다면 그것은 천군만마를 얻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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