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엊그제 저녁 후배 몇 사람과 술자리를 같이했다. 후배라 하지만 모두 일흔을 넘긴 친구들이다. 한 후배가 자신보다 두어 살 적은 친구의 말에 ‘꼬닥거리지 마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깜짝 놀랐다. ‘꼬닥거리다’가 “자꾸 경솔하고 방정맞게 행동하다”는 뜻의 사투리다.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경멸하는 뜻이 담긴 좋지 않은 말이다. 아무리 손아래 사람일지라도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말이다. 분위기 나빠질까 봐 얼른 수습하여 화제를 돌렸다. ‘까불거리다, 까불대다’는 말도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말인데 ‘꼬닥거리다’는 사투리이지만 더 심한 모멸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까불거리다’는 말은 자꾸 가볍고 세게 흔들리거나 움직이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타작마당에서 키질을 하여 검불을 제거하고 알곡을 고르기 위해 아래위로 흔들고 털어내는 작업을 ‘까불다’고 하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마라. 일의 앞뒤를 가려서 신중하게 이야기해라”는 식으로 점잖게 말하면 될 것을 심하게 감정을 건드리는 ‘까불고 있네’ 등의 말도 가능한 한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까불 때 까불더라도 품위를 지켜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까불고 품위를 지킬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들이 까불면 결국엔 눈에 눈물을 내고, 영감이 까불면 술이 생기고, 할매가 꼬닥거리면 바람벽(배림박)에 똥 사 붙이고, 개가 꼬닥거리면 바람이 분다는 말도 있다. 경박스런 행동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좀 경박스러워 보여도 상대를 평하거나 나무랄 때 ‘꼬닥거린다’나 ‘까불거린다’는 표현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남을 비방하거나 멸시하는 말투보다는 말을 가려서 사용하여 우리 사회를 부드럽게 만들고 품위 있게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작금에 보궐선거를 두고 난무하는 비방과 흠집 내기의 말들을 들으면서 천박하다는 느낌을 많이 가진다. 지도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저 정도인가 싶을 정도다. 후보자들의 언행도 그렇지만 캠프에서 돕는다는 사람들이나 심지어 정치평론가라는 사람들도 오십 보 백 보다. 정말 “까불고들 있다. 꼬닥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씁쓰레 하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미국의 대선 과정도 별로 다를 바 없는 것을 보니 정치인이 되려면 거짓말하기, 덮어씌우기, 흠집 내기의 명수가 되어야 하는가 보다. 선량(選良)이란 말은 너무 과분하여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호남지방에서 무당의 신대 내리는 절차를 흉내 내며 노는 성인여자놀이가 있다. ‘꼬대각시놀이’, ‘당골놀이’, ‘춘향각시놀음’이라고도 하며, 김제 지방에서 많이 행해진 놀이라고 한다. 경상도에서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러 사람이 빙 둘러앉은 가운데에 술래는 길이 40cm정도 되는 막대기를 한 손에 쥐고 눈을 감고 정신을 모은다. 이 때 여러 사람이 “춘향아, 춘향아 아무 달 아무 시에 점지 점지하셨다”는 주문을 노래로 반복하면 막대기를 잡고 있던 술래의 손이 흔들리고 일어나 춘향이 춤을 추기 시작하는 놀이다. 일종의 꼭두각시놀이다. 충청도 지방에서는 “꼬대 꼬대 꼬대각시 한 살 먹어 엄마 죽고, 두 살 먹어 아비 죽어”로 시작되는 ‘꼭두각시노래’를 부르기도 했단다. 일종의 최면술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생각된다.

‘꼬닥거리다’, ‘까불거리다’가 꼭두각시놀음에서 온 말이든, 곡식의 알곡을 가리기 위한 키질에서 온 말이든 이런 말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정치인의 언어는 국민을 상대로 하는 만큼 품위가 있어야 한다.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처신하는 정치가도 없었으면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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