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과 동시에 오늘날 헌법에 해당하는 임시헌장 공포 102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임시헌장이란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 지사들이 임시정부를 수립할 계획으로 임시의정원 회의를 열고 제정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첫 헌법이다.

임시헌장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제1조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 규정했는데, 이는 1948년 제헌헌법 이래 지금까지 불변의 헌법 제1조가 돼 왔다.

임시헌장은 민주주의의 원리에 입각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본 성문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지난 2019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이와 관련 경북일보는 한국헌법학회장을 역임한 정극원 대구대 법학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 헌법이라 할 수 있는 임시헌장의 중요성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정 교수와의 1문 1답.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헌법에 해당하는 임시헌장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1919년 기미년, 그해 3월 1일 세계에서 유래가 극히 드문 평화시위를 통한 독립선언이 있었다.

3·1 운동의 정신적 결정체인 임시정부가 1919년 4월 11일 상해의 프랑스 조계(식민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과 동시에 소위 말하는 대한민국 임시헌장 10개 조항을 공포했다. 이 임시헌장은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보장과 국가의 통치질서 두 가지를 포함하고 있다.

1919년 4월 11일의 임시헌장은 그 내용면에서 국민주권주의·권력구조·기본권보장·의회주의 등을 담고 있는 오늘날 의미의 성문헌법이다. 현행 헌법 전문에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현행 헌법을 이야기할 때에 그 출발점은 임시헌장이라는 점에서 현재에도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임시헌장은 헌장선포문과 본문 10개 조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대한제국의 복구가 아니라 새로운 건국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2조에는 행정부에 해당하는 임시정부와 의회에 해당하는 임시의정원을 구분해 ‘권력분립’을 의도했다.

특히 제4조에는 기본권규정으로서 신교·언론·이전·신체·소유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데, 임시헌장의 핵심적 내용에 해당하는 것이다.

헌법이 기본권보장을 최고의 가치로 한다는 점에 미뤄봤을 때 오늘날 현대 헌법의 내용을 그 당시에 이미 갖췄다.

그 밖에도 선거권·피선거권·국민의 3대 의무·국제연합가입·사형제도폐지 등의 내용도 담고 있다.

임시헌장은 그 표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임시정부, 즉 망명정부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우리 선조들은 이미 국가 내의 최고법인 헌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한 나라의 헌법격인 임시헌장을 갖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그 수립과 동시에 국제적 승인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펼쳤나.

-망명정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수립과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합법정부로 승인을 받기 위한 심혈을 기울였다.

당시 김규식 부주석을 대표로 같은 해 4월 프랑스 파리강화회의에서 독립청원을 한 바 있고, 9월 8일 모스크바의 만국사회당대회(제1차 모스크바 코민테른회의)에 임시헌법의 기초자인 조소앙 국무위원이 직접 참석해 대한민국 독립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당시 리투아니아 국회에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승인안이 통과된 바 있다.

그 후 광복이 될 때까지 계속해 임시정부 승인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미국·소련·영국·중국의 정치 목적에 의해 끝내 국제적으로는 승인을 받지 못했다.

국제사회에서의 승인은 곧 대한민국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인 만큼 국제 승인을 위한 노력을 한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의 열악한 환경 아래에서 우리 선조들은 눈물겹게 노력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전후의 세계사는 어떤 국면에 놓여있었나.

-시기적으로는 1914년 7월 28일 발칸반도(오스트리아-세르비아)에서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때였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1917년 말, 러시아와 독일이 강화를 통한 휴전을 모색하자 민족자결주의로 평가받는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14개조 평화원칙’을 발표했다.

이후 1918년 1월 11일에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기였다.

헌법과 관련해서 보면, 1919년 8월 10일 남부 독일의 ‘바이마르’라는 지역에서 현대 복지국가적 헌법의 효시인 ‘바이마르헌법’을 만들었다.

인류에게 절대적 빈곤을 초래한 제1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사상을 대체하는 복지국가 사상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바이마르 헌법에서는 인간다운 생존권의 보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최초로 규정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토지공개념의 근거가 되는 재산권의 공공복리의무 등도 규정했다.

독일의 바이마르헌법은 우리나라 제헌헌법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면 임시정부의 임시헌장은 그 당시의 다른 나라들로부터의 영향을 받은 바가 없었나.

-임시헌장을 제정할 당시에 대한 자료를 확인할 수 없어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18세기 당시 해외에서 만들어진 헌법의 내용이 임시헌장에 일부 포함된 점에 미뤄봤을 때, 외국의 영향을 어느정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 후에 만들어진 프랑스 인권선언을 보면, 제16조에는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어 있지 않고, 권력의 분립이 확정되어 있지 아니한 사회는 헌법을 갖고 있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한다. 오늘날 헌법의 개념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제17조는 재산권의 불가침을 선언하고 있다. 개념의 측면에서 임시헌장은 프랑스 인권선언에 닿아 있다고 본다.

또 1787년 제정 이후 1791년 수정조항이 추가된 미국 연방헌법을 보면, 제1조가 종교와 언론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임시헌장 제4조의 기본권규정이 공교롭게도 그 순서가 종교·언론 순으로 나열된 것은 미국 연방헌법의 영향으로 추측된다. 임시헌장의 기초자인 조소앙 국무위원과 우리 선조들은 이미 외국의 헌법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미국·프랑스 헌법 제정 등 세계 각국은 발 빠르게 헌법을 마련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헌법이라는 점에서 특성은 무엇인가.

-임시헌장에는 권력분립과 기본권보장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헌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은 훌륭한 헌법이었다.

특성적인 면에서 임시헌장을 분석하자면 정식국가가 아니고 임시정부의 임시헌법이라는 점, 장래의 국가수립의 목적으로 제정된 예비헌법이라는 점, 조국독립을 실현하기 위한 저항헌법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조직·기본권보장 등을 규정한 국가 단위의 헌법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임시헌장 제4조는 오늘날의 기본권을, 제9조는 사형제도의 폐지를 규정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제4조에 규정된 기본권은 인류 보편의 자유와 권리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신체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언론의 자유·이전의 자유·재산권 보장 등은 공동체 생활에 있어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실현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헌법의 최고가치인 자유의 보장을 중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자유를 보장하지 않거나 이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헌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의 역사는 국가로부터의 자유의 보장의 역사다.

제9조, 신체의 자유와 관련해 사형제도의 폐지는 특이한 점이다.

오늘날 현대국가의 헌법에서도 사형제도의 폐지에 대해 헌법에 직접 규정하고 있는 나라는 벨기에·스페인·아일랜드 등 소수에 그친다는 점에서 그 당시 기준으로는 굉장히 혁신적인 내용이라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현재의 우리 헌법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우리나라 제헌헌법은 1948년 7월 12일 제정, 같은 달 17일에 공포됐다.

제헌헌법에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라고 명시된 우리나라 헌법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특히, 임시헌장이 존재했던 만큼 실제 국권을 상실한 1910년부터 1948년 제헌헌법을 제정하기까지의 기간도 헌법의 역사가 된다.

제헌헌법 심의과정 당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는 이유에 대한 질의가 있었고, 이에 대해 “3·1 독립운동을 계기로 해외 임시정부”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한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 밖에도 임시헌장에서의 기본권은 제헌헌법 제2장의 기본권으로 계승·규정돼 있다. 임시헌장 제1조의 민주공화제라는 국가의 성격 규정은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공화국헌법, 오스트리아공화국헌법, 1925년 중화인민헌법초안 등 당대의 헌법문서의 규정보다 세계적으로 오히려 앞선 진보적인 규정으로 평가받는다.

임시헌장의 내용이 세계 각국에 알려지게 된다면 헌법국가로서의 우리나라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이에 따라 임시헌장 102주년을 단순히 기념하는 의미로 끝낼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임시헌장 10개 조항의 내용을 세계의 각국에 제대로 알리는 것도 하나의 사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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