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내로남불’이 불공정과 이중성을 상징하는 강력한 키워드로 등장했다. 현 정부여당 관계자들의 이중적인 여러 행태들을 비판할 때 언론과 야당에서 자주 사용하면서 다시 소환된 이 줄임말은 선거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제 이 말은 국내를 넘어 세계인들에게도 소개될 정도로 유명세를 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야말로 ‘웃픈’ 현실이다.

뉴욕타임즈는 지난주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결과를 보도하면서 ‘내로남불’을 우리말 소리 나는 그대로 ‘naeronambul’로 소개했다. 신문은 naeronambul은 ‘한국 유권자들이 문 정권 측근에게 느끼는 반감’이라는 설명과 함께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If they do it, it‘s romance; if others do it, they call it extramarital affair)이라는 자세한 해석까지 덧붙였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한 이중 잣대, 이중적인 태도를 빗대어 하는 말이란 것을 세계인들도 모를 리 없다.

홍자성이 쓴 채근담에는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란 말이 나온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같이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같이 엄격하게 대하라는 뜻이다. 여권이 그동안 국정운영 전반에서 이러한 각오와 실천으로 임해왔다면 ‘내로남불’이라는 냉소적인 말이 이토록 회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거결과 또한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크고 작은 일마다 ‘지기추상’과는 오히려 반대되는 상황이 이어지거나 남 탓이 잦아지면서 ‘내로남불’이 다시 소환된 것이다. 더 엄격해야 할 자신에게는 오히려 더 관대하고 사사건건 상대와 남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我是他非)은 공정도 상식도 아니다.

자신이나 우리 편의 문제는 어물쩍 넘어가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죄 값을 단단히 물어야 한다고 떠든다면 그 말을 누가 믿고 수긍하겠는가? 자신의 잘못은 못 본 척하면서 남의 잘못들만 들추어내 개혁을 소리쳐봐야 누가 그것을 따르고 지지하겠는가?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에 완패한 민주당이 지도부 총사퇴와 함께 비상체제에 돌입한 가운데 비대위원장의 첫 일성도 “내로남불의 수렁에서 하루속히 나오겠다”는 것이었다. 과연 어떻게 빠져나올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뼈를 깎는 반성과 되돌아봄 없이는 얼굴주름처럼 깊게 패인 그 흔적을 쉽게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섣불리 대응하다간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혹독한 비판과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다. 상황은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

‘내로남불’은 자신이 지켜야 할 기준과 잣대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부정하는 것이다. 자기모순이요 공동체 파괴행위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을 지켜내지 않으면 개인은 물론 사회는 금방 병들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함께 가꾸고 지켜나가야 할 공정과 신뢰라는 소중한 공유지에도 ‘공유지의 비극’이 닥치고 말 것이다.

일찍이 선인들이 ‘신독’(愼獨)과 ‘무자기’(毋自欺)를 그토록 일깨우고 강조해온 것도 이런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다. 공정과 상식은 저마다 자신의 기준과 잣대를 스스로 지켜내고 보호해 나갈 때에만 존립한다.

크든 작든 기준은 늘 같아야 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잣대는 일관되어야만 한다. 그것을 지키고 보호할 주체도 자신이며 극복해 나갈 대상 또한 바로 자신이다. 저마다의 이러한 노력들이 공동체에 모아 지고 공유될 때 비로소 ‘내로남불’도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지도자와 리더, 힘 있는 사람부터 솔선해 보여주어야 한다.

이제 ‘내로남불’이 아닌 ‘춘풍추상’(春風秋霜)의 회자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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