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충운 환동해연구원장
문충운 환동해연구원장

T.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노래했다. 작금의 집권여당이 처한 4월이 그렇게 보인다. 최근 치러진 서울·부산시장 선거는 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부동산문제 등 현 정권의 실정과 무능과 위선 등이 누적된, 예고된 결과였다. 이러한 권력에는 늘 국민의 추상같은 심판이 따랐다는 사실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이전과는 눈에 띄게 다른 점은 2030청년들의 선거 참여와 반란(?)이었다. 지난 7일 방송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서울시장의 경우 20대 남성의 72.5%가 야당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한다. 이들의 선택은 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정권심판에 있었다는데 대해 정치권은 물론 대부분 국민이 동의하고 있다.

청년들은 특성상 진보적 성향이 짙다. 하지만 이번 선택은 달랐다. 이들은 꼰대 같은 보수야당도 싫지만 집권세력의 위선적 평등과 공정과 정의에 역겨움을, 자칭 진보의 내로남불에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프랭클린 P. 애덤스가 남긴 “선거란 누구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라는 선거의 본질을 실감케 했다.

이렇다 보니 선거 후폭풍도 이전과는 달라 보인다. 진 쪽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긴 쪽 또한 반성하고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여야 정치권이 앞다투어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여야 모두 새로운 지도부 선출에 앞서 크고 작은 내홍은 있지만 청년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의지는 같아 보인다. 정치권이 이들의 분노에 어떤 답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이렇게 청년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와 의사 표현이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되고 있다. 도산 안창호는 “참여하는 사람은 주인이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손님이다”라는 경구를 남겼다. 투표하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대해 불평도 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청년들이 정치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기대해 본다.

청년들의 정치참여는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보장하며, 권력의 독선과 오만, 부정과 위선을 견제·방지하는 등 정치발전에 역동적인 순기능으로 작용할 것이다. 정치참여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강력하고 유용한 것은 선거참여이다. 직접 출마를 하거나 투표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40세 이하 청년 의원의 비율이 가장 낮다고 한다. 그래서 이전부터 중앙정치나 지방정치에서 청년의 정치 대표성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특히 일자리·주거·양육 등 청년정책의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져 각종 선거 때마다 청년의 정치 대표성 확대가 이슈가 되었지만 아직도 미흡한 실정이다.

이제 본격적인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방선거도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청년의 대표성 확대를 위한 정치권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부 정당에서 시도했던 청년 대상의 정치아카데미를 더욱 내실 있게 활성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울러 청년 정치인 발굴·육성을 위한 시스템의 구축, 그리고 공천에서의 청년할당제 도입 등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사회는 디지털시대로 완전히 변모했다. 디지털에 익숙한 청년들이 정치참여를 통해 청년 문제들을 해결하며 국가와 지역의 미래를 주도적으로 열어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청년 인재들이 정치라는 영역에 과감하게 도전해 늘상 불거지는 정치인의 자질 논란을 종식시키고 정치의 후진성을 극복하는 주체가 되어 세상을 바꾸어 나가기를 희망한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