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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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을 찾았다. 여왕은 충효당 안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여왕은 구두를 신은 채 마루에 올라섰다. 안내자가 집 안으로 들어갈 때는 신을 벗는 것이 한국 생활방식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신을 벗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서양에서는 맨발을 보이는 것은 몸을 보이는 것과 같다고 여겨 실내에서조차 신을 벗지 않는다. 충효당을 방문한 여왕은 기꺼이 한국 풍속과 예절을 따라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었다. 여왕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을 보인 것은 충효당 안채에서가 처음이었다고 했다.

여왕이 충효당을 찾은 것은 전국에 ‘충효당’이란 당호를 가진 집이 여럿 있지만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이 가장 한국적인 전통을 잘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충효당 대문 앞에는 1999년 당시 여왕 방문을 기념해 심은 잘 생긴 구상나무 한 그루도 서 있다.

‘충효당’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1542~1607)의 종택으로 국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서애는 충효당이 세워지기 이전 집에서 소년기와 만년을 보냈다. 당호를 ‘충효당’이라 한 것은 서애가 임종할 무렵 자손들에게 남긴 “충과 효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느니라(忠孝之外無事業)” 라는 시 구절에서 따왔다.

대청에 걸린 ‘충효당’ 당호 편액은 당대의 명필 미수 허목(1595~1682)이 전서체로 썼다. 건축학적으로나 역사 문화적으로 우리나라 고택 가운데 이만한 가치를 지닌 집이 없다. 그런데 이 소중한 보물을 지난 10일 낮에 화물차가 들이받아 지붕의 일부가 훼손됐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600여 년 된 기와지붕과 건물 일부가 파손됐다.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형편 없는 문화재 관리수준이다. 문화재청은 안동 하회마을 관리를 왜 손 놓고 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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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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