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1100만명 유권자를 상대로 한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샤이 진보」는 없었다. 흔히들 선거는 뚜껑 열어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 뚜껑 안에는 샤이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재보궐 선거 결과를 분석하면 “샤이 진보는 민주당의 바램이었다”는 결론이 났다. 그렇다면 왜 선거철이 되면 각 진영은 샤이표에 목을 걸까? 답은 간단하다. 여론조사 결과가 진영에 따라 불리하게 나타났을 때 샤이표를 의식하면서 선거 때가 되면 진영 스스로 희망 고문 속에 빠져 버린다. 물론 과거 선거에서 샤이표가 없지는 않았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시장 여론 조사 추세를 보면 오세훈 후보가 한명숙 후보에게 20% 이상 압도적으로 앞서 있었으나 투표 결과는 샤이표가 작용해 여론조사와 반대로 0.6% 차이로 매우 근소하게 오세훈 후보가 당선되었다. 20대 총선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4·13 총선을 앞둔 마지막 주말에 여론조사 기관들은 그 당시 차기 대권 후보로 꼽히는 새누리당 오세훈 후보가 더민주 정세균 후보를 꺾을 것으로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정 후보가 오 후보를 10% 이상 앞선 득표율로 승리했고, 서울 은평구을 역시 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은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 출마한 이재오 후보가 6선 고지에 오를 것으로 내다봤지만, 결과적으로 더민주 강병원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최근 선거에서 샤이표가 작용을 하지 않는 이유는 어디 있을까?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그 답이 나온다. 우선 여론조사 방식이 매우 과학화되고, 여기에 AI까지 가세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여론조사방식은 주로 집전화를 모집단화 시켜 ARS 및 전화면접 방식으로 여론 조사를 실시함으로써 신뢰도에 한계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 여론 조사 모집단은 집전화가 아닌 핸드폰 번호에 의한 안심번호가 등장함으로써 여론조사가 한층 정교해졌다고 볼 수 있다. 여론조사가 정교해졌다는 것은 샤이표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지난 21대 총선에서 당시 미래통합당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불리한 결과가 나오자 당 지도부는 샤이보수에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참패로 기대했던 샤이표는 없었다.

샤이표가 점점 사라져 가는 또 다른 이유는 네거티브 선거에 대한 학습효과다. 네거티브 선거는 불리한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상대편의 약점과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선거를 진흙탕 싸움으로 몰아,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그 대표적인 네거티브 학습효과 선거사례로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병풍사건」을 들 수 있다.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 「군 면제 의혹」이 제기된 사건으로 인해 이회창 후보는 대선에서 낙선하고 해당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과 설훈 등은 처벌을 받음으로써 당시 이회창 후보는 누명을 벗었다. 그래서 유권자들은 과거 수많은 선거를 통해 네거티브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충분히 학습되어있다. 이번 재보궐 선거 역시 오세훈 후보 내곡동 셀프 특혜와 박형준 후보 개인 신상털기 등 네거티브로 선거판이 혼탁 되었고, 민주당은 이러한 네거티브 선거로 샤이진보가 움직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샤이표가 없었다.

그리고 최근 여론조사에 응하는 유권자들의 태도를 통해서도 샤이표의 존재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과거 집전화로 여론조사에 응하는 유권자들은 혹시나 내가 여론조사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해서 여론조사에 응하지 않거나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반하게 여론조사에 응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여론조사에 응하는 유권자들은 매우 단호하고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을 밝힘으로써 샤이표의 존재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끝으로 대한민국 국민 3명 중 1명꼴인 「MZ세대」들의 표심은 샤이표에 남아있기를 거부한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MZ세대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로서 (2019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전체 인구의 33.7%를 차지한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운둔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세대이다. 특히 이들은 탈이념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적어도 샤이표에서 벗어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 MZ세대란 밀레니얼(Millennials)의 M과 제네레이션(Generation)의 Z가 합쳐진 말을 뜻 한다.

차기 대선에서 최대 변수는 샤이표가 아니라 MZ세대가 될 수 있기에 각 정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결국 사라져가는 샤이표에 희망을 걸고 선거를 준비하는 정당은 허상(虛想)을 쫓는 것과 같다는 것을 명심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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