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자연 조화 이루는 천변의 풍광

키큰 소나무숲 속으로 치유의길이 나있다.

어김없이 찾아온 봄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어지러움을 모른다.

물오른 잎사귀가 연초록으로 나풀거리고 따사로운 햇볕에 메말랐던 대지에 생기가 돌고 겨우내 참았던 꽃망울이 얼굴을 활짝 열고 웃고 있다.

완연한 봄 하늘이 싱그럽게 열린 지난 4일, 모처럼 먼 곳을 다녀왔다.

영양군 일월면에 위치한 일월산자생화공원 표지석.

포항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영양에 있는 ‘외씨버선길’로 봄나들이 나섰다. 영덕-상주 간 고속도로를 타고 동(東)청송IC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영양군에 들어선다. 영양읍을 지나 일월면 용화리에 있는 ‘외씨버선길 7길(치유의 길)’ 시작점인 ‘일월산 자생화공원’에 닿았다.

오래전 여기서 경북산악연맹이 주최한 경북산악인 한마음등산대회를 가진 적이 있어 낯설진 않지만 주변이 잘 정돈되어있고 탐방객들의 편의를 위한 각종 시설이 새롭게 갖추어져 깔끔하다. 자생화공원이 있는 이곳은 역사적 아픔이 서려 있는 데라 더욱 숙연해진다. 일제 강점기 때 수탈의 현장인 광산 구축물이 옛 성곽처럼 아직도 산기슭에 남아 있고 곳곳에 흔적이 있다. 이곳에 영양군에서 꽃과 나무를 심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자생화공원’이라 이름 지어 관광지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외씨버선길’은 우리나라 대표 청정지역인 청송, 영양, 봉화와 강원도 영월 등 4개 군(郡)이 모여 만든 총 길이 240㎞의 문화생태탐방로의 이름이다.

자생화공원 산 기슭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광산구축물이 보이고 무심한 수양벚꽃이 꽃을 피우고있다.

4개 군을 연결하는 13개 구간과 연결길의 4색(色)길이 합쳐지면 영양 주실마을 출신인 청록파시인 조지훈(趙芝薰)의 시(詩) ‘승무(僧舞)’에 나오는 ‘외씨버선’ 모양새와 같다 하여 지어진 이름처럼 사뿐사뿐 빠져드는 4색(色)매력에 흠뻑 젖어든다고 설명하고 있다.

자연치유마을 대티골 안내판과 재미나는 호랑이조형물이 길손을 반간다.

13개 구간 중 7길의 이름이 ‘치유의 길’이다. 일월산 자생화공원에서 역사적 아픔이 묻어 있는 일제 시대의 광산을 둘러보고 자연생태마을 대티골 깊숙이에서 시작하는 반변천(半邊川)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아름다운 숲길의 뛰어난 경관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자연치유의 길이 봉화군 경계인 우련전 까지 8.3㎞ 구간에 조성되어 있다.

우리가 사는 경상북도가 넓긴 넓은가 보다. 포항에서는 봄꽃이 끝물인데 여기는 한창 환한 얼굴로 길손을 반긴다. 개나리며 벚꽃, 목련이 활짝 피어나 봄의 향연을 즐긴다. 자생화공원에서 봉화방면으로 가는 31번 국도를 따라 용화마을 앞을 지나 ‘자연치유 생태마을 대티골’이라는 안내간판과 재미나는 호랑이 조형물이 반갑게 손짓하는 곳에서 도로를 건너 반변천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길로 접어든다. 아담한 펜션과 황토집들이 햇빛 가득 머금은 채 길손을 기다린다. 자그마한 뜰에는 노란 수선화가 방긋 웃고 뜻 모를 방문객을 맞아 강아지가 짖어댄다.

인적이 드문 조용한 마을을 벗어나 ‘외씨버선길’ 푯말과 보랏빛 리본이 나풀거리는 길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한다. 길목 군데군데 이곳 출신 오일도(吳一島)시인의 시(詩)가 새겨진 돌판이 있어 시를 음미하며 걷는 멋도 솔솔하다.

외씨버선길 조형물이 4색(色)길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데크로 된 탐방로와 다리도 있고 새롭게 놓인 빨간 아치형 철재 다리를 건너 중간에 포토존에서 한 컷 하는 여유도 부리며 느릿느릿 자연 속으로 빠져든다. 반변천 발원지인 뿌리샘까지 이어지는 곳곳에 대티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외씨버선길 7길(치유의 길)’이 마을을 바라보며 옛 국도와 숲길을 따라 나 있다.

반변천계곡에서 본 짙푸른 소(沼)가 선녀탕으로 불린다.

포토존을 지나 계곡길을 걷다 보면 우렁찬 물소리와 깊은 소(沼)로 힘차게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볼 수 있어 여기가 ‘선녀탕’으로 알려진 곳임을 알 수 있다.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깊은 선녀탕 짙푸른 물빛에도 봄이 비친다. 오일도 시인의 ‘봄비’라는 시가 새겨진 돌판 앞으로 노란 개나리가 만개하여 시와 자연이 멋진 조화를 이루는 천변의 풍광이 따사롭게 느껴지는 한낮을 만끽하며 계곡길을 나서니 신작로가 나온다.

치유의길을 오르다 만나는 원두막 쉼터가 옛정취를 느끼게 한다.

옛 국도와 새로 난 31번 국도가 갈리는 지점에 ‘자연치유 생태마을 대티골’이라는 입간판이 길손을 기다린다. 옛 국도로 들어서면 ‘일월산 등산로 입구’라는 입간판과 ‘일월산 황씨 부인당’과 ‘천문사’ 표지판이 나오고 계곡 건너 벚꽃이 만개하여 운치를 더하는 천문사가 보인다. 천문사를 지나면 ‘아름다운 숲길’ 안내도가 나오며 31번 국도를 개선하면서 옛 도로가 사용되지 않는 이 길을 ‘아름다운 숲길’로 만들어 피톤치드 가득한 소나무 숲속을 걸을 수 있게 만들어 탐방객에게 청정에너지를 들이키게 하고 있다. 영양군에서는 ‘하늘은 이토록 아름다운 길을 영양에 허락해 주었다’고 감사한다.

데크길 옆 쉼터에 세워진 포토 존이 이색적이다.

반변천 발원지 쪽 길목에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환경부장관이 지정한 안내판이 크게 걸려 있는 대티마을 입구가 보이고 ‘치유의 길’은 오른쪽 옛 국도를 따라 나 있고 시작점에서 여기까지 2㎞를 이동하였음을 알리며 도착점인 우련전까지는 6.3㎞가 남는다는 이정표가 갈 길을 안내한다.

대티골은 낙동정맥 내륙에 위치하고 있으며 영양의 진산 일월산(1,219m)의 넉넉함을 품고 있는 마을로 낙동강 상류 지류인 반변천의 발원지이며 영양군의 젖줄을 간직한 청정자연지역으로 각종 산나물과 약초 등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르는 길 왼편에 외씨버선 조형물이 만들어져 있고 크게 자란 소나무가 양쪽에 도열해 있는 숲길이 이어져 나온다.

빨간 철재 아치형 다리가 새롭게 단장되어 운치를 더한다.

힘들이지 않고 숲길을 가면서 세속에서의 번뇌를 씻어 버리고 쉬엄쉬엄 걷다 보면 정자가 있는 쉼터가 나오고 산비탈 너른 경사지 산나물 재배지에서 바쁜 손놀림으로 나물 채취에 여념이 없는 아낙네들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고요한 산속 정자에서 목마름을 달래며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옛 도로를 따라 바람결에 휘날리는 보랏빛 ‘외씨버선길’리본의 연주에 맞춰 자연을 노래하며 걸으니 그간의 두통이 씻은 듯 낫는다. 꾸역꾸역 오르는 길에는 쉬어갈 수 있는 벤치도 더러 있고 산새도 찾아와 놀아주는 자연 속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다 보니 ‘외씨버선길’ 조형물 곁 자그마한 돌판에 새겨진 시(詩)가 생각난다.

영양출신 시인 오일도의 시(詩) 봄비가 새겨진 돌판 모습.

# 외씨버선길 #

- 이 길을 걷는 동안/ 나는 없습니다/ 바람과 구름과 나무/ 새들과 꽃들 .../

스스로 그러함 (自然)만이/ 생명의 울림으로/ 가득합니다 /- 김원주 作

숲속에서 보이는 일월산 정상 군부대시설이 지척인양 가깝게 보인다.

이렇듯 소박하고 조용한 숲 속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외씨버선길 7길’ 8.3㎞ 구간을 종주하지 못하고 진등(5㎞ 지점)에서 되돌아 내려왔다. 내려오는 숲길 오른쪽 산등성이에 월자봉(月字峯) 중계탑과 일월산 정상인 일자봉(日字峯) 군(軍)시설이 뚜렷이 보인다. 자연생태의 보고(寶庫)로 알려진 일월산을 지척에 두고 오르지 못한 아쉬움도 남지만 청송, 영양, 봉화, 영월 4개 군의 청정자연지역을 돌아볼 수 있는 ‘외씨버선길’ 13개 전 구간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치유의 길’로 불리는 ‘외씨버선길 7길’을 오르내리며 되새겨 본 조지훈 시인의 시(詩) ‘승무(僧舞)’ 한 소절을 다시 한 번 읊조리며 ‘힐링 앤 트레킹’ 스물일곱 번째 ‘걸어서 자연 속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 얇은 사(沙)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薄紗)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하략) -

김유복 경북산악연맹 前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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