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회사들 표지.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는 밀라노의 식당을 대상으로 화장실 사용 칸수를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식당은 화장실 내의 하나의 칸만 남기고 나머지 칸에 자물쇠를 채워야 했다. 그런데 손님들은 유일한 칸을 사용하기 위해 사람이 가득 찬 좁은 복도에 줄을 서야만 했다.

스위스 항공사의 코로나19 대응 조치도 마찬가지다. 승객 전원에게 출발 도시와 목적지를 자세히 써넣도록 했고, 의심 증상이 있다면 옆자리 승객 이름까지 적도록 했다. 그런데 기내에는 펜이 2개 밖에 없었다. 그 펜은 20분 동안 세균 가득한 손에서 손으로 이동했다.

세계적 컨설턴트인 마틴 린드스트롬이 쓴 ‘고장 난 회사들’(어크로스 펴냄,박세연 옮김)에는 이런 비상식적 사례들이 다양하다. 저자는 “상식의 결핍이 규모와 분야를 떠나 전 세계 모든 조직에 널리 뿌리 내리고 있으며, 상황은 다소 암울하기까지 하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기업에서 상식이 결핍되면 소비자의 외면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책에 소개된 사례를 보면 한 기업은 회의 일정을 효과적으로 조율하기 위해 온라인 캘린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기업은 다른 직원이 언제 시간이 비어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 시스템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회의를 잡기 시작하면서 많은 직원의 일정이 회의로 가득 차버리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결국 직원들은 별 연관 없는 회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캘린더 시스템에 거짓으로 회의 일정을 만들기 시작했고, 진짜 회의 일정은 종이 캘린더에 따로 기록했다.

다른 사례로 TV 리모컨이 나온다. 저자는 미국의 한 호텔에서 뉴스를 보려고 TV 리모컨을 집었지만, 온·오프 버튼이 각각 2개였고 화살표와 ‘a-b-c-d’ 등 많은 버튼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저자는 몇 달 후 우연히 만난 이 TV 리모컨을 만든 회사의 엔지니어로부터 이런 리모컨이 나온 것은 “조직 내부 갈등” 때문이라는 답을 들었다. 여러 사업부가 리모컨의 형태를 놓고 경쟁을 벌였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하자 이 기업은 리모컨을 여러 구역으로 나눠 TV, 케이블, 티보(Tivo), 위성방송 등 각각의 사업부에 할당했다고 한다.

이처럼 비즈니스 세계에서 상식이 붕괴하는 요인을 저자는 몇 가지로 추려낸다. 먼저 기업 대부분이 고객이 아니라 투자자와 주주에게만 신경을 쓰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많은 기업이 고객 중심의 경영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사내 정치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기업이 너무 다양한 직급으로 이뤄졌거나, 직원들 사이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을 때, 상사가 생각과 주장을 습관적으로 바꿀 때, 파벌이 조직문화를 지배할 때, 구성원들이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 영역을 지키는 일에 집착할 때 상식은 사라진다고 한다.

이 밖에도 넘쳐나는 규칙과 정책, 규칙에 대한 집착으로 상식은 패배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한 기업에 컨설팅을 위한 자료를 USB에 담아 우편으로 보냈지만, 기업의 규정대로 암호화가 돼 있지 않아 다시 메일로 보내야 했다. 문제는 이 기업의 규칙은 1MB 이상의 첨부파일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49MB짜리 파일을 999KB로 쪼개 50차례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몇몇 파일이 전송 도중 사라졌다. 그 기업은 파일에 부적절한 단어가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적절한 단어에는 ‘금지’도 포함됐다.

저자는 상식과 공감, 인간성을 중심으로 기업과 직원을 통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특히 이 책의 원제인 ‘상식부(The Ministry of Common Sense)’를 설치하라고 제언한다. 기업에서 드러나는 상식의 결핍을 체계적으로 제거하고, 직원과 고객의 삶에서 발생하는 혼란과 비효율성을 해결하기 위한 ‘감독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 나오는 상식부를 설치한 기업의 사례를 보면 미국 남부의 어느 기업은 직원들을 위해 커피와 스낵을 준비해뒀다. 하지만, 커피잔을 씻기 위한 세제와 수세미를 비치해 달라는 직원들의 요청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거절했다. 이로 인해 몇몇 직원은 장염에 걸렸고, 결국 직원들 대부분 하루에 두 번씩 사무실에서 나와 인근 커피숍에서 휴식 시간을 가져 생산성이 떨어졌다. 이후 상식부는 세제와 수세미를 구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런 변화는 매우 사소하지만, 조직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직원들은 사무실 안에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고 병가는 줄었기 때문이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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