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대전 표지.
미국과 중국의 항공모함 전단이 이달 초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분쟁 수역에서 동시에 항해 작전을 하며 ‘무력 시위’에 나섰다. 이는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중국 견제에 나서면서 나타난 양국 간 힘겨루기의 단면이다.

물론 남중국해에서 미·중 간 긴장 양상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필리핀과 베트남이 함께 중국에 맞서는 등 남중국해 주변 영유권을 두고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필리핀은 남중국해에 정박 중인 중국 선박을 거론하며 필요하면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국제정치 및 외교 전문가로 평가받는 로버트 캐플런(69)은 최근 번역 출간된 ‘지리 대전’(글항아리)에서 남중국해를 둘러싼 나라 간 이해관계를 분석했다. 저자는 중국과 대만,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을 찾아 주요 현장을 답사한 뒤 고위층과 심층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저자는 우선 남중국해를 둘러싼 나라들을 언급한다. 베트남은 한때 미국 내부를 혼란스럽게 한 외부 요인이었지만 최근엔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면서 중국과의 군사적 균형을 위해 미국과 군사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남중국해.연합
또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의 자유화 정책으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를 가졌고, 인도네시아는 활발하고 안정적인 민주주의가 바탕이 된 경제성장으로 ‘제2의 인도’가 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를 결합한 모델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책은 “동남아시아 국가는 내부적인 정통성과 국가 건설의 문제보다는 영토 주권을 현재 해안선 바깥으로 확장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둔다”며 “외부로 향한 이런 힘들이 모이는 남중국해가 전 세계에서 해로를 통해 수많은 경제 조직을 연결하는 목구멍과 같은 역할은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남중국해를 “유라시아 해상 항로의 심장”이라고 표현하며 매년 화물 적재 상선의 50% 이상, 전 세계 해상 교통의 3분의 1이 남중국해 요충지를 통과한다고 말한다. 한국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3분의 2가, 일본과 대만이 쓰는 에너지의 60%가, 중국 원유 수입량의 80%가 각각 남중국해를 거쳐 공급된다고 강조한다.

책은 이런 지리적인 중요성 이외에도 남중국해에 70억 배럴의 석유와 900조 세제곱피트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는 것과 200개가 넘는 작은 섬과 바위, 산호초가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동남아 국가들의 영유권 주장은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의 에너지 소비가 현재의 2배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는 2030년께 더 격렬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또 중국과 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브루나이가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군도<南沙群島>·베트남명 쯔엉사군도·필리핀명 칼라얀군도) 주변 섬과 암초를 점유해 자국 군사시설을 세운 것도 예로 든다.

책은 현재 미 해군이 남중국해를 지배하고 있지만 앞으로 상황이 바뀔 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 해군 규모는 계속 줄고 있지만, 세계 2위의 중국 해군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걸 근거로 제시한다. 저자는 향후 어느 순간에 이르면 중국이 미 해군의 자유로운 남중국해 통행을 차단할 수 있을 거로 예측한다.

저자는 “남중국해를 장악하게 되면 중국은 서태평양과 인도양, 두 개의 대양을 지키는 해군을 갖게 된다”며 “중국이 당장은 대만과 한반도에 초점을 맞춰야겠지만 남중국해는 중국의 미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저자는 미국이 과연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라는 지위를 내려놓을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진다. 미국이 아시아의 번영과 안정에 기여했다는 우월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관리 위주의 온건한 역할에 만족할지 결론을 내리진 않으면서 “미래에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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