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산자락에 1500년 전 성산가야 역사 살아 숨쉬다

차동골마을과 성주읍 전경

성주군 성주읍에 있는 성산(星山·해발 383m)은 소가 누워 있는 형상 ‘와우형(臥牛形)’이라고 하는 성주읍기의 안산(案山)으로 산자락이 성주읍 성산리, 선남면 성원리, 신부리, 장학리, 명포리 등 여러 자연마을이 둘러싸고 있다.

성주읍의 성산리는 그 이름을 성산에서 따 왔을 뿐만 아니라 옛 성산가야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지역으로 성산자락에 자리한 여러 자연 마을마다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어 자못 흥미롭다.
 

마을회관에 걸려있는 새마을운동 당시 협동작업 광경

△ 누구나 살고 싶은 부촌 ‘차동골마을’

옛날 차도가 없었던 시절, 성주읍의 남쪽 관문 역할을 한 굴티고개 (屈峴·200m)아래 차동골마을도 성산자락에 자리한 성산리의 여러 마을 가운데 한 곳이었다. 차도가 만들어진 지금은 그 역할을 하지 않지만 아담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로 누구나 살고 싶은 따뜻한 마을이다.

차동골마을입구(우측으로 굴티고개길이 보인다)

마을 이름인 차동골은 ‘임진왜란 때 의병들의 전승지로서 수레가 많이 집결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성주 용암면의 중거리(中巨里) 쪽에서 목재와 숯을 실은 수레가 이 마을을 거쳐 성주읍내로 들어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으며, 또 ‘마을 뒤편의 산등성이가 ‘수레등’의 모습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는 등 여러 유래가 전하고 있으나, 수레(車)에 얽혀서 마을 이름이 생겨난 것은 분명하다.

차동골마을에는 1937년에 현재 성주읍의 중앙초등학교의 전신으로 경산공립심상소학교 부설 성산간이학교로 출발한 성남초등학교는 1944년 설립되어 1946년 이전하기까지 운영되기도 하였다. 일찍부터 신문물을 받아들여 1955년부터 4-H 운동을 전개해 성주에서는 유일하게 농수산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그 성과가 높았다. 또한 1970년대 농촌근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부강(富强)마을로 지정돼 군내에서 가장 먼저 부촌(富村)을 이룩한 마을이기도 했다.

옛 빨래터가 있었던 자리에 남아있는 노거수

차동골마을은 문충공(文忠公) 신숙주(申叔舟)의 후손인 신수련(申守璉)이 임진왜란 때 이곳에 입향한 이래 고령신씨 집성촌이 됐다가 조선 숙종 때 밀양박씨 박시윤(朴時潤)이 입향하면서 그 후손들이 거주하게 되었고, 이 외에도 청주한씨, 김해김씨 등 각 성씨가 혼재하여 살고 있다. 마을에는 78가구에 15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어 비교적 큰 규모를 자랑한다.

△고구마에서 참외로 소득원이 바뀌다.

전국 생산량의 70%를 생산하는 참외 재배로 유명한 성주군인 만큼 차동골마을도 참외재배가 주 소득원이다.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78가구 가운데 무려 60가구가 참외를 재배해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다만 마을의 농경지가 넓지 않기에 주민들은 마을 밖으로 나가서 참외를 재배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참외를 주로 재배하지만 40여 년 전만 해도 차동골마을 주민의 주 농산물은 고구마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농경지가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었던 탓이리라. 지금은 그 산비탈의 밭들이 숲으로 변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차동골마을이야기를 전해준 이원식 이장

△변함없는 마을의 전통.

차동골마을 주민들이 누구나 인정하는 마을의 제일 큰 자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주민 간의 화합과 단결이라고 한다. 1970년대 차동골마을은 새마을운동이 가장 활성화된 마을로 농번기 탁아소를 운영하는 등 새마을운동의 선두에 선 전국의 명소가 되었는데, 화합과 단결의 전통이 이때부터 더 단단해졌다고 한다.

마을의 모든 일을 함께 의논하고 함께하고자 했던 차동골마을 주민들의 모습은 마을 공동 빨래터와 마을 공동 창고와 같은 시설을 통하여 발현되었다. 세탁기와 같은 생활이기의 등장으로 필요 없어져 이제는 노거수만이 홀로 남아 있는 옛 공동 빨래터는 마을 주민들의 화합과 단결을 되새기는 장소가 되고 있다.

이장으로 마을 주민의 화합을 이끌고 있는 이원식 이장(61세)은 “성주뿐 아니라 전국 어떤 마을보다도 우리 마을이 화합하고 단결하는 데는 일등”이라고 자랑하면서 “마을 일이라면 누구나 함께 하고 나서주기에 마을 주민이 함께할 일은 쉽게 처리된다”며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요즘 보기 드물게 4대가 함께하는 대가족의 가장인 이 이장은 부녀회가 중심이 되는 재활용 처리가 차동골마을 화합과 단결의 대표적인 예라면서 지금도 매주 목요일에 순번대로 돌아가면서 마을을 위해 봉사하고 있어 항상 고마운 마음이라고 한다.
 

굴티고개의 벚꽃 길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굽이굽이 돌아가는 벚꽃 길.

차동골마을을 끼고 넘어가는 굴티고개 길은 포장되지 않았던 예나, 포장된 지금이나 변함없이 직선화되지 않고 구불구불한 옛 모습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도로의 하나로 요즘 성주군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바로 벚꽃이 만개하는 3월 말~4월 초가 되면 만들어지는 벚꽃길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고갯길의 좌우에 심어진 벚꽃 나무가 자라나 꽃이 만개하는 봄철이 되면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구불구불하게 자연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핀 벚꽃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예전 성주읍의 남쪽 관문으로 많은 사람들이 수레를 몰고 드나들었던 굽이굽이 길이 포장되면서 이제는 차량이 이용하는 차도가 되었지만, 그마저도 그리 많은 편이 아니어서 한적하기만 했던 고갯길이 자연스럽게 서행으로 드라이브하며 봄 마중을 하는 새로운 명소가 된 것이다.

△성산가야의 역사가 함께하는 마을.

지난 2007년에 개통한 김천~현풍 구간의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개설하면서 차동골마을은 옛 성산가야의 유적이 함께하고 있는 마을로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마을 곁의 산자락에 옛 유적이 분포하고 있음이 조사되어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로 여러 고분유적과 유물들이 출토돼 1500년 전 성산가야의 역사가 마을과 함께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2021년 5월 12일 개관식을 앞두고 있는 성산동 고분군 전시관의 앞마당에는 이곳 차동골마을의 유적에서 출토된 일부 고분의 유적들이 원형대로 이전해 복원되어 있고, 함께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될 예정이어서 마을 주민들에게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도움말= 박재관 성주군 학예사

권오항 기자
권오항 기자 koh@kyongbuk.com

고령, 성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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