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박영석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특임교수·전 대구MBC 사장

어이가 없거나 기가 막히거나 어처구니가 없을 때는 말문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너무 이치에 맞지 않는 큰일을 당하거나 황당할 때도 그렇지만 상대방의 예상치 못한 말이나 반응을 마주했을 때도 그렇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일 때문에 말문이 막히는 것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문제는 일상의 사소한 말 때문에도 말문이 막힐 때가 많다는 것이다. 말문을 막는 사람은 주변일 수도 있고 바로 자신일 수도 있다. 고의든 무심코든 누가 말문을 막으면 대화는 그 순간부터 끝나고 만다.

퇴근한 남편이 아내와 저녁을 먹다가 업무와 관련된 전화를 받고 나더니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아내가 걱정이 되어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한마디를 물었다.

“회사에 무슨 일이 생겼어요?”

“일은 무슨 일이야! 말해봐야 당신이 뭘 알기나 해!...”

일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남편을 생각해서 건넨 말인데 남편은 아내의 말문을 무참히 막아버린다.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저녁 약속이 있는 후배가 사무실에서 퇴근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옆자리의 선배는 아직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끙끙거린다. 먼저 퇴근하는 것이 약간 미안도 하고 해서 후배가 말을 건다.

“선배님, 오늘 좀 늦겠네요? 커피라도 한잔 빼다 줄까요?”

“신경 꺼라! 내 커피는 내가 알아서 할거다...”

인사치레로 한 말인데 답변이 기대와는 완전 다르게 나오니 후배는 괜히 기분이 안 좋아진다. ‘괜찮아. 나도 빨리 끝내고 갈 거야’라는 식으로 얼마든지 좋게 받아넘길 수도 있는데 선배는 말에 가시를 돋게 해 후배의 말문을 막았다. 후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휑하니 퇴근해 버린다.

입사한 지 몇 년 안 된 직원이 상사와 옆자리에 앉아 먼 거리 출장을 가고 있었다. 침묵이 잠시 흘렀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직원이 용기를 내 상사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부장님, 골프 잘 치신다고 들었는데 핸디가 얼마나 되세요?”

“응?! 김 대리가 그런 걸 알아서 뭐하려고!...”

상사가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깃거리로 삼으면 대화가 더 잘 이어진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내본 건데 상사는 바로 말문을 막았다. 예상치 못한 말에 말문이 막혀버린 김 대리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말문을 막아버리는 대화의 적들은 많다. 무슨 말을 꺼내자마자 “그것 이미 들은 이야긴데...” 아니면 “또? 몇 번째야?” 하는 말도 말문을 닫게 한다. “넌 몰라도 돼”, “들으나 마나지!”, “남의 일에 신경 좀 쓰지 마!”, “당신이나 잘해!”, “나도 안다니까!”, “결론만 말해!”, “나 지금 좀 바쁜데...” 하는 말도 말문을 막는 대화의 적들이다.

말 잘하는 사람은 결코 상대방의 말문을 막지 않는다. 오히려 도중에 끊어진 말도 어떻게든 이어가게 해주고 하던 말도 더 잘할 수 있게 해준다. 이미 들은 이야기도 처음 듣는 것처럼 귀 기울여 주고 알고 있는 것들도 몰랐던 것처럼 관심을 갖고 들어준다. 이들은 어디에서든 먼저 인사를 건네는 편이며 늘 상대방에게 마이크를 양보하는 사람이다.

해바라기는 어디서든 해를 찾아 향하듯 사람의 마음도 결국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향한다. 주변에 사람이 많고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은 분명히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특히, 그는 어떤 경우든 결코 상대방의 말문을 막지 않는 사람이다.

누구도 말문을 막을 수는 없다. 결코 막아서도 안 된다. 혹시 누군가의 말문을 막지는 않았는지부터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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