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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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설가 루쉰(魯迅 1881~1936)의 ‘아큐(阿Q)정전’ 주인공 아큐는 자기합리화의 달인이다. 길을 가다가 무뢰배들로부터 폭행을 당해도 “저 녀석들은 내 아들이다. 그러니까 나는 아들에게 찍힌 것뿐이다”라며 집으로 돌아간다. 아큐는 본인에게 치욕스럽거나 나쁜 상황을 어떤 핑계로든 좋은 상황이라고 스스로 왜곡해 정신적 자기 위안을 한다. 실상은 자신의 망상으로만 승리하는 아큐의 ‘정신승리법(精神勝利法)’이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쓴소리를 듣겠다는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모임에서 당 대표에 출마한 우원식 의원의 ‘친일 잔재 완전 청산’ 발언을 두고 “생각이 과거에 갇혀 ‘정신승리’에 빠졌다”고 했다. 최 교수는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안보까지 좌우하는 반도체 문제인데 “왜 (민주당은)친일 잔재 청산이 중요한 이슈가 되고 반도체는 이슈가 되지 않는가?”라며 현실인식 부재를 지적했다.

최 교수는 민주당이 서울·부산시장 선거에서 대패하고도 패배로 생각하지 않는 느낌이라고 했다. 최 교수의 지적대로 민주당은 겉으로는 반성을 이야기하지만 선거 패배의 원인인 불공정이나 경제문제 등에는 아큐처럼 애써 외면하고 있다.

민주당 권리당원 일동이라 자처하는 강성 지지자들은 조국 사태를 반성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낸 초선의원 5명의 휴대전화 번호를 노출시켜 좌표를 찍고 ‘양념’(악플 공격)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검찰개혁이니, 언론개혁이니 하는 민생과 거리가 먼 소모적 논쟁을 재점화하고 있다.

당권을 잡기 위해 권리당원 표심 잡기에 혈안인 의원들과 현실 인식이 결여된 일부 극성 당원들을 보면 소설 속 아큐가 연상된다. 위선과 불공정에는 철저히 내로남불이고, 적폐 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고 있는 법과 제도의 유린에도 분노는커녕 ‘개혁’이라 위로한다. 망상에 사로잡힌 이 시대 아큐들의 정신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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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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