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천 경운대학교 초빙교수·벽강중앙도서관장
한태천 경운대학교 초빙교수·벽강중앙도서관장

“존경하는 선생님, 먼저 갑니다. -중략- 선생님 오시는 길 닦아 놓겠습니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이 꽃다운 청춘을 마감하면서 필자에게 남긴 하직 인사 편지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이다. 당시 필자는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고, 글을 남긴 학생은 2년 전에 6학년 담임을 한 학생이었다. 제자가 떠난 지 40년의 세월이 흘러갔지만, 아직도 그 제자의 초등학교 시절의 모습과 유서에 담긴 내용이 또렷이 기억되고 있다. 해마다 스승의 날을 전후하면, 제자의 글이 눈에 밟혀 가슴이 아리다.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시작하여 ‘오시는 길 닦아 놓겠다.’라는 말. 제자가 한 말처럼 나는 존경받을 수 있는 선생님이었는가. 나의 어떤 점이 제자로 하여금 존경할 수 있도록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제자에게 특별히 해준 것이 없다. 그냥 한 사람의 선생이었을 뿐이다. 그런 나를 존경한다며, 유서까지 남기고, 먼저 가서 오시는 길 닦아 놓겠다고 했다. 만약 제자가 미리 가서 길을 닦아 놓는다면, 나는 과연 그 길을 갈 자격이 있는 선생님이었던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지만 아닌 것 같다. 지금도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지만 선생의 길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가야 하는 길인지 평생을 두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르치는 보람이 얼마나 큰지 평생 잊지 않도록 깨우쳐 줬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인격과 지식을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선생님을 공경하며, 교권을 존중하자는 의미로 법제화한 날이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라는 스승의 날 노랫말도 있다. 지식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혜까지 가르친다는 의미로 스승이라 부른다. 한때는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라고도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언젠가부터 “선생은 많아도 스승은 없고, 학생은 많아도 제자는 없다.”라는 말이 보편화되고 있다. 삶의 지혜를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전달하고 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다. 학부모와 학생, 교사가 부담스러워하니 ‘스승의 날’을 폐지하거나 ‘교육의 날’로 바꾸자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스승의 길, 참 어렵고 힘들다. 그래도 가야 할 길, 스승의 길. 그 길을 가자. 학부모와 사회는 학교 교육이 지식 전달의 장으로 전락했다고 비난할지라도, 도덕과 윤리를 가르치고 예의와 예법을 가르치고 있음에 자긍심을 가지자. 때로는 학부모가 불쾌한 말을 하고, 때로는 학생이 눈을 치뜨고 훑어보더라도, 그래도 내가 가르친 이 세대는 기성세대보다는 훨씬 더 도덕적이고 더 지혜롭다는 사실에 만족하자. 기준이 달라져서 교사가 지식을 전달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그래도 인간을 가르치는 최고의 기여자는 선생님이라는 자부심을 가지자.

세상이 외면하더라도 나는 나의 길, 스승의 길을 가자. 카네이션 한 송이 가슴에 꽂아주며, ‘선생님, 존경합니다.’라고 말하는 제자가 있다. 길을 가는데 뒤에서,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뛰어와 허그 하는 제자가 있다. 어디선가 소주잔 기울이며,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는 제자가 있다. 험악하다고들 하는 세상, 이만하면 잘 살지고 있지 않았는가. 무너졌다는 교권이라지만 이만하면 해볼 만한 직업이 아닌가. 열정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며, 차별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제자를 가르치자. ‘스승이 가는 길에는 제자가 닦아 줄 길도 있다’라는 생각도 하면서.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