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식 중앙공무원교육원장 인터뷰

"솔직히 여기 오기전에는 이렇게 중요한 자리인지 몰랐어요.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미래가 인적자원의 질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부를 지탱하는 공직사회의 역할과 사람교육이 정말 중요하죠.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능력과 인품, 도덕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게 저의 임무입니다."

지난 20일 취임 100일을 맞은 정장식(57) 중앙공무원교육원장(차관급)을 과천정부청사 끝자락에 위치한 2층 집무실에서 만났다. 관악산 기슭에 자리한 중앙공무원교육원은 '국가발전을 선도하는 공무원 육성'이란 목표 아래 행정고시 합격생, 중앙부처 국장급 공무원, 외국인 파견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정부의 국정철학과 비전을 전파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1972년 행정고시 합격으로 공직자의 길에 들어선 이후 경제기획원, 국무총리실, 청와대, 내무부 등 중앙부처 행정요직과 민선 2, 3기 포항시장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그였지만 중앙공무원교육원장 자리가 '맞춤양복'처럼 편안하게 보였다. '제 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5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는 마치 철학강의를 하는 듯 했다. 겸손과 정직, 감사, 청렴이란 단어가 수차례 반복됐다.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 번의 좌절(도지사 경선 패배)이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죠. 교만한 생각을 버리고 좀 더 겸손한 자세로 어른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였어야했는데….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구조조정으로 밀려난 공무원들을 상대로 특강하면서 저의 실직의 아픔이 그들에게 큰 위안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합니다."

38세 때 전국 최연소로 거창군수를 지냈고 상주시장, 포항시장 등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의 공직생활은 2006년 경북지사 경선 패배로 제동이 걸렸다. 실패란 단어를 몰랐던 그로서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웠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돈 없고, 박사학위 없고, 심지어 사법시험에 도전하지 않았던 것도 원망스러웠죠. 실직의 아픔도 난생 처음 느꼈습니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용기를 북돋워 준 것은 팔순 노모(老母)의 따뜻한 사랑이었다. "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으시며 '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구나, 이 정도면 호강했다, 뭐가 더 필요 하느냐, 마음을 비워라'고 말씀하셨을 때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흐르더군요. 모자가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순간 정 원장은 얼굴을 감싼 채 말문을 닫았다.

2007년 대구대 객원교수로 임용된 그는 전공(서울대 경제학과 졸)을 살려 '국제통상 이해'라는 과목의 강의로 인기를 끌었다. 강단에 서기 전 10권의 무역학 전공서적을 모두 파워포인트로 꾸며 강의 자료로 활용했다. 당시 외국계 컨설팅 회사의 억대 연봉의 사외이사자리를 거절하고 학교를 선택한 그였다.

"강단에 서길 참 잘했어요. 1년 6개월에 불과하지만 교수 경험이 지금의 교육원장 직무 수행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공무원들도 공부해야합니다. 전문성을 키워야 하지요. 세계는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지식정보화사회로 변하고 있는데 공무원들이 안주하면 안 되죠."

포항시장 재임 시절로 화제를 바꿨다. 제일 잘한 게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첨단과학도시 포항건설'이란 비전을 제시하고 '4엔진론'을 실행에 옮긴 점"이라며 "첨단과학도시와 함께 환동해물류중추도시, 해양관광문화도시, 포스코 첨단화 등 4개의 엔진을 통해 포항의 미래를 밝혔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 고 말했다. 가장 아쉬운 일에 대해 "전국 지자체 최초로 중저준위 방폐장유치를 선언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라며 "하지만 19년 동안 표류하던 국책사업이 해결됐고 또 당연히 와야 할 동해안인 경주에 유치돼 다행"이라고 했다.

정 원장은 부인 조애경씨와 이화여대 뒷산의 28평 서민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다. 술, 담배도 끊었고 좋아하던 골프채도 놓았다. 요즘은 근처에 사는 장녀(정승아씨·세브란스병원 안과의사)의 손자 재롱에 푹 빠져 산다고 한다.

인터뷰 시작 전 민감한 질문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깨고 '목표'를 물었다. 행정고시와 서울대 후배(상관인 원세훈 행정안정부장관이 서울대 2년 후배)들이 정부 요직에 두루 등용되는 것에 비춰 50대 후반에 맡은 교육원장 자리가 종착지가 아닌 것 같아 '최종 목적지'가 궁금했다. 예상대로 "임기 초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향출신 이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도록 묵묵히 맡은 바 임무를 다한다는 일념 밖에 없다"는 모범답안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자리가 아니라 이름(보람)을 남기는 삶을 살고 싶다"고 여운을 남겼다.

2005년 펴낸 그의 세 번째 저서인 '오늘도 희망의 돛을 올린다'는 책 제목에서 향후 행보를 짐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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