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벌거벗고 인터뷰 하는 꿈을 꿨습니다. 그 덕분에 금메달을 딴 것 같습니다"

냉정한 표정을 잃지 않던 김경문 감독도 23일 베이징올림픽 야구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에는 어지간히 흥분했는지 얼굴이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승이 확정된 직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는 순간에도 "고맙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 했을 정도였다.

시간이 흐르고 흥분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힌 뒤 그는 "동메달이 목표였고, 금메달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말을 겨우 꺼냈다.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 분명했다. 전체적인 실력 차는 많이 좁혀졌지만 아직 쿠바, 미국, 일본이 한국보다는 한 수 위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차이를 좁힐 수 있는 건 선수들 간의 팀워크 뿐이라고 생각했다. "야구는 팀이 하는 것"이라는 게 그가 몇 번이고 되풀이한 소신이었다.

실제로 한 경기, 두 경기 1점차 살 떨리는 승리를 거듭하면서 선수들의 팀워크가 강해지는 걸 보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특히 진갑용과 이승엽이 부상이나 타격 부진으로 힘든 순간에도 후배들을 위해 버팀목 역할을 해주는 걸 보고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둘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는 쿠바 같은 강팀을 이기기 위해 야구 상식을 벗어나는 작전을 펼쳤다. 무사 1루 찬스가 와도 안전한 번트 대신 강공 지시를 한 것이었다. 김 감독은 "기본을 탈피해 변수를 주고 싶었다"며 "찬스가 왔을 때 번트를 대면 결과가 나빠도 감독 책임은 없지만 나는 그게 싫다. 욕을 먹을 각오로 강공을 지시했는데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23일 결승전은 끝까지 류현진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윤석민이나 정대현의 컨디션이 100%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 하지만 9회 말 류현진이 1사 만루 상황으로 몰리는 바라에 정대현을 투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만루 상황에서 병살타를 잡아내지 못하면 지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대현의 병살타로 우승이 확정되고 우커송구장 한가운데에서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는 순간에도 김 감독은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지난 10일 베이징에 도착한 후에 꾼 꿈이 생각났다. 벌거벗고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를 하는 꿈이었다. 좋은 징조인지, 나쁜 징조인지 몰라서 남들에겐 차마 말하지 못한 꿈이었다.

앞으로 대표팀 감독을 계속 맡을 지에 대해서는 말끝을 흐렸다. 그는 "돌아가면 우선 소속팀(두산)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 열리는) 내년 3월은 전지훈련 기간이라서 개인적으로 대표팀에서 빠지고 싶지만 여기서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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