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태권도 마지막 날 경기로 열린 23일 베이징과학기술대학 체육관에서는 올림픽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들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여자 67㎏이상급 준결승 두 번째 경기가 열리기 직전 세계태권도연맹(WTF) 관계자가 마이크를 잡더니 "중국과 영국의 8강전에서 중국 선수가 이겼지만 재확인 결과 영국 선수가 이긴 것으로 밝혀져 이를 정정한다"고 발표했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이 체급 금메달 2개를 독식했던 천중(중국)이 이기고도 탈락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경기 종료 직전 1점을 지던 새라 스티븐슨(영국)이 안면 공격을 성공시켜 2점을 얻어야 했지만 인정이 되지 않았다는 설명이었다.

금메달을 잔뜩 기대하고 경기장을 찾은 중국 팬들은 흥분했고 스티븐슨은 판정 번복의 수혜자가 됐다는 이유로 엄청난 야유를 들어가며 경기를 한 끝에 결국 4강에서 패하고 말았다.

이는 올림픽 태권도 사상 초유의 판정 번복이었다.

양진석 WTF 사무총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이는 태권도가 공정한 스포츠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개최국 입장에서 스포츠 정신, 태권도 정신을 살려 결과에 승복한 중국이나 차기 올림픽 개최지로서 이런 태권도 정신을 배우겠다고 하는 영국 모두 승자"라고 해석했지만 '꿈보다 해몽' 격이었다.

중국 기자들은 "올림픽에서 판정이 뒤집힌 예가 있었느냐"며 양사무총장을 몰아세웠고 영국 기자들 역시 "대체 언제 스티븐슨에 4강에 뛴다는 통보를 했느냐. 갑자기 나가다 보니 진 것이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양사무총장은 "아직 태권도는 올림픽에서 '어린 종목'이다. 어느 종목이나 오심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것이고 다만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해명에 급급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숨돌릴 새도 없이 이번엔 심판이 선수에게 얻어맞는 또 하나의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남자 80㎏이상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앙헬 발로디아 마토스(쿠바)가 판정에 불만을 품고 주심의 얼굴을 앞돌려차기로 가격했다.

놀란 관계자들이 달려나와 말렸지만 코치까지 가세해 거친 행동을 계속했다.

아만 칠마노프(카자흐스탄)에 2-3으로 뒤지던 마토스는 2라운드 경기 도중 발을 다쳐 응급 치료를 받아야 했다.

제한 시간 1분이 지나 경기를 속개해야 했지만 마토스는 경기장에 들어오지 않았고 이에 주심이 기권패를 선언하자 격분했던 것이다.

심판에게 항의하던 마토스는 갑자기 앞돌려차기로 심판을 공격해 이번 올림픽 최악의 판정 시비 장본인이 됐다.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관중이 이에 적극 호응했다는 사실이다. 중국 팬들은 한동안 '쿠바'를 연호하며 좋아하다가 마토스가 경기장 밖으로 나가자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천중이 판정 번복으로 패한 데 대한 반발 심리였다.

양진석 사무총장은 시상식이 끝난 뒤 다시 기자 회견을 열어 "쿠바 선수와 코치에게 영구 제명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면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침통해 했다.

전날 문대성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은 기자 회견을 통해 "태권도가 올림픽에서 퇴출될 것이라는 식의 기사는 좀 자제했으면 한다"는 부탁을 했었다.

그러나 기사를 자제하는 것은 둘째치고 이미 전 세계로 생방송을 탄 올림픽 경기 중계를 통해 안 좋은 이미지가 널리 퍼지게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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