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커송 마운드에 꽂힌 태극기한국 야구팀이 23일 베이징 우커송 야구장에서 벌어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결승에서 쿠바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딴뒤 투수 마운드위에 태극기가 꽂혀있다. (AFP=연합)

"한국시리즈에서 두차례 2등을 해봤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고생해서 2등을 했는데도 아무 대접을 받지 못하는 선수들을 보고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야구 첫 금메달 위업을 이끈 뒤 24일 베이징 코리아하우스 기자회견에 나선 김경문 감독. 그의 표정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지만 말 속에는 그간의 눈물과 한숨이 베어 있었다.

그는 지난 4년간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감독을 맡아 두 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다. 2006년엔 삼성 라이온즈에 눌렸고, 지난해에는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먼저 2승을 거두고도 4연패를 당한 끝에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 때부터 그의 이름 뒤에는 `2등 감독'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꼴찌인 적도 있었다. 선수 시절 그는 원년 우승팀 OB 베어스의 포수 겸 8번 타자로 주로 나섰다. 박철순과 신경식, 김유동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 틈바구니에서 김경문은 주로 보내기번트를 대는 임무를 맡았고, 타율은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랬기에 선수들의 고민을 이해하는 감독이 되고 싶었다. 그의 소신은 `2위도 의미가 있고, 동메달도 의미가 있다'는 것과 `경기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가 한다'는 것이었다.

대표팀 감독으로 처음 참가한 올림픽에서도 목표는 금메달이 아니라 동메달이었다. "큰 기대는 하지 못했고, 최선을 다해서 동메달은 꼭 따고 싶었다"

가장 힘들었던 경기는 의외로 중국전이었다. 미국을 극적으로 이긴 다음날인 14일 약체 중국과 6회까지 0-0으로 접전을 벌일 때에는 `질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김 감독은 포수 출신답게 고집이 세다. 윤석민을 뽑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본선 풀리그 고비마다 마무리로 미리 점찍어둔 한기주를 투입하다 위기를 자초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의 귀는 활짝 열렸다. 23일 쿠바와 결승전이 대표적인 예.

9회 말 1사 만루 위기에서 강민호가 퇴장당한 순간에는 `여기서 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위기의 순간 선발 류현진 대신 마운드에 올릴 수 있는 투수는 정대현과 윤석민 뿐.

막상 윤석민을 뽑은 뒤로는 그를 전적으로 믿었기에 처음엔 윤석민을 투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강민호 대신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된 주장 진갑용이 "정대현이 좋을 것 같다"고 하는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

그리고 정대현이 쿠바 타자를 병살타로 돌려세우고 야구 첫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그는 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정상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다.

"야구를 그만해도 후회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그만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더군요" 꼴찌와 만년 2등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아는 그였기에 1등의 감격은 더욱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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