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고승 원효·혜공·자장·의상 머물던 곳
시시각각 변하는 비경 사람 넋 앗아갈 지경

보물 제1280호 '동종'

산과 물이 하나로 어우러진 곳. 오어사.

불교에서 모나지 않고 두루 잘 어울리는 것을 '원융(圓融)'이라고 한다. 오어사는 절과 호수와 산이 그림처럼 잘 어우러진 절이다.

가을비 내린 오어사 호수에는 실경의 가을 산빛과 수채화처럼 어릿어릿 물바닥에 비치는 산빛이 너무 아름다워 절을 찾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연인들이 가을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많이 찾는다.

오어사 뒷마당에서 올려다 본 자장암 절벽에 단풍이 타오르고 있다. 뒷마당에서 다리를 건너 원효암으로 오르는 길에는 떡갈나무와 졸참나무 등이 마음여린 사람처럼 먼저 가을을 타고 있다. 누렇게 단풍이 들고 있다.

오어사는 천년 세월을 당대의 고승들이 내리 찾아들어 마음을 닦아 마침내 반질반질한 거울을 만든 자리다. 봄여름 가을 겨울 없이 맑고 아름다운 자연을 느낄 수 있어서 도를 닦는데도 좋은 곳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라 고승 원효와 혜공이 흘러내리는 물에서 가제잡이를 하면서 붙였다는 이름 '오어사(吾魚寺)'.

오어사는 포항시내에서 동남쪽으로 50여리 떨어진 곳에 있어 운제산 등산을 할 때 한 번씩 들리는 절이지만 가을엔 절 구경 자체많으로도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곳이다.

오천읍에서 서남쪽으로 자동차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지만 초행인 사람은 두어번 길을 물어 찾아가야 한다.

오어사는 '산은 산, 물은 물'이 아니라 '산과 물은 하나'라고 법문을 던진다. 오어사 앞 호수에는 운제산이 불그레 해진 얼굴을 비추며 하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오어사의 경치는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비경이어서 내로라 하는 사진작가들은 누구나 한 번쯤 이 곳을 찾는다.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 산빛에 어울어진 절의 고즈넉한 모습과 바람과 햇빛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호수의 물빛이 사람의 넋을 앗아갈 지경이다.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10년(585)에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고찰이다. 불교의 이상세계인 극락이 바로 이곳이라 할 만큼 산수가 잘 어우러진 이 곳은 신라시대 네명의 조사가 머물렀던 곳이다.

사조사(四祖師)란 혜공과 자장, 원효, 의상 이들 네 스님 모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당대 최고의 승려들이었다. 지금도 오어사에는 원효의 행적을 알 수 있는 유품이 전시관에 잘 보존돼 있다. 또 대웅전 북쪽에는 자장암, 남서쪽에는 원효암이 있어 역사적 사실을 증거해 준다.

뿐만 아니라 1997년에 발견된 상량문에는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스님이 이 곳에서 글을 마무리했다는 기록이 있어 고승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오어사에는 1995년 절 앞 호수의 준설작업중에 발견돼 경북일보가 최초로 세상에 알린 '오어사 동종'이 보물 제 1280호로 지정돼 있다. 이 종은 고려 고종 3년(1216)에 주조된 고려 후기 범종의 전형을 보여주는 종으로 섬세한 제작기법과 아름다운 문양이 특징이다. 또 경상북도문화재 제 88호로 지정돼 있는 대웅전과 원효대사의 삿갓, 수저 등도 보관돼 있다.

오어사의 이러한 문화재도 볼만하지만 자장암과 원효암을 오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오어사를 둘러보고 햇빛이 추녀끝 풍경을 스칠 때쯤 서남쪽 구름다리를 건너 원효암으로 오르면 잃어버린 소를 찾아가는 목동의 마음이 된다.

오어사에서 원효암까지는 약 500m. 가까운 거리라고 생각되지만 비탈길을 따라 잰걸음으로 걸어도 15분 정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다. 원효암에는 스님 두어분이 기거하고 있다. 원효암의 삐죽이 열린 세살문 안쪽 벽면에는 마음을 열어주는 글귀가 적힌 족자가 걸려 있다.

'불사선 불사악(不思善不思惡)'. 선악과 시시비비의 경지를 떠난 세계인 것이다.

오어사에서 등산을 즐기기 위해서는 또 다른 길을 택해야 한다. 오어사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새롭게 단장한 자장암이 나타난다. 숨을 몰아쉬며 자장암에 올라 마시는 물맛은 그 어떤 청량음료에도 비길 것이 아니다.

자장암을 뒤로하고 산을 넘으면 산여동으로 가는 내리막길이 나온다. 산길을 따라 15분 정도 가면 '천자봉'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그곳부터 본격적인 산악길이 시작된다.

등산을 위해 찾지 않았다면 돌아 내려오면 되지만 좀더 가을 산빛을 즐기려면 40여분 걸리는 운제산 정상까지 1.5㎞ 정도의 등산도 권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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