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 국회의원에서 공기업 사장으로 '김광원 한국마사회장'

"지금은 '펀(fun)경영'이란 말이 보편화됐지만 사실 90년대 초 포항시장 재임시절부터 직원들에게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살아가자'고 말해왔습니다. 일이 즐거워야 창의성이 나오고, 능률이 오르는 법이지요. 요즘도 출근하기 전 무슨 얘기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까 궁리하고 있습니다."

울진출신으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광원(68·사진) 한국마사회장은 취임 3개월만에 공기업 사장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하고 있었다. 표정에 여유가 넘쳤고 말에는 열정이 느껴졌다. '즐겁게 살자'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그의 낙천적 기질이 국정감사에서 '낙하산 인사'논란을 일거에 잠재우는 원천으로 여겨졌다. 야당의원들에게 '품질좋은 낙하산'이란 얘기를 들었다는 그를 23일 오후 과천 서울경마공원 내 회장실에서 만났다. 중앙에 커다란 원형 테이블이 놓인 회장실은 의외로 소박했다.

- 3선 의원 출신으로 공기업 사장으로 변신했는데, 어떤 각오로 일하고 있는지.

"국회의원은 공공복리를 위해 일한다. 근데 이 공공복리라는 개념이 무척 애매하다. 반면에 기업의 목표는 매우 분명해서 더 긴장된다. 한마디로 긴장의 연속이다. 분명한 목표에 집중할 수 있는 보영자라는 위치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지금 마사회는 사감위 규제, 지방세 인하, 사회공헌 등 시급한 과제가 산적해 있다. 주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 취임일성으로 승마산업 육성을 강조했는데, 일반 국민들로서는 아직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느낌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승마인구를 늘리는 일이다. 승마인구를 늘리면 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관련 산업이 같이 발전하게 된다. 이를 위해 지자체와 협력해 각 지역마다 승마장이 많이 생겨나도록 할 것이다. 현재 영천시에서 운주산 승마장을 운영하고 있고, 많은 지자체들이 승마장 건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경북에선 상주와 구미, 봉화에서 말 산업에 대한 관심이 많다. 낙동강변에 말 트레킹 코스를 설치하면 멋진 그림이 나올 것이다. 승마와 골프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컨트리클럽 조성도 추진하겠다. 레저 산업으로서 승마의 전망은 매우 밝다. 임기 내에 말 산업 육성법(가칭)을 제정해 우리나라 말 산업을 한단계 끌어올리도록 하겠다."

- 지난 99년 경주경마장 건설이 문화재 출토로 중단됐는데 경북지역 경마장 재추진 계획은 있는지.

"현재 장외발매소의 매출비중이 높아서 전국에 2개 정도 경마장을 더 지어야 되는 상황이다. 경북지역에 경마장을 건설할 계획을 갖고 있지만 아직 검토단계로 구체적인 일정은 밝히기 어렵다. 다만 접근성이 좋아야하고 무엇보다 지자체의 의지가 강해야한다. 하지만 임기 내 경마장 건설에 욕심을 부리지는 않을 생각이다."

- 한국마사회가 국민에게 여가선용을 제공하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사행산업 팽창이 우려되는 부정적 측면도 강한데.

"승마사업을 마사회 주력사업의 하나로 키우려고 한다. 현재 경마에 편중된 사업구조가 기업 이미지를 악화시키고 공기업으로서의 존립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앞으로는 승마사업과 경마사업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겠다."

-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도박이 오히려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 경마로 인한 도박인구 양산은 도박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대비책은.

"경마를 건전하게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려면 건전한 관람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경마공원은 이미 공원화사업을 통해서 주말에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고, 장외발매소도 관람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경마가 지금처럼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마사회의 자발적인 건전화 노력이 부족했던 측면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앞으로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소액으로 건전하게 즐기는 경마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 마사회가 그동안 방만 경영과 비리 연루, 도덕적 해이 등으로 회사 이미지가 부정적인데.

"나도 마사회에 오기 전에는 편견을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 와 보니 무척 청렴하고 고지식할 정도로 규정에 충실한 조직이다. 작년에는 청렴우수기관으로 상까지 받았다.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다. 취임 후에 첫 월급을 받고 액수가 너무 적어서 충격을 받았다. 국회의원 시절보다도 못한 것 같다. 업무추진비도 많지 않고, 법인카드 사용에도 제한이 따른다. 그런데도 모임에 가면 밥값은 당연히 내가 내는 걸로 안다.(웃음) 지금 모든 공공기관의 예산과 인건비는 기획재정부가 똑같은 지침을 내려 통제하기 때문에 특정기관이 더 방만하다고 하기 어렵다. 국정감사나 언론을 통해서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 피감기관장으로 국정감사를 받은 소감은. 또 국감개선 방향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피감기관장이 되고 보니 피감기관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고 고충도 많다는 걸 알았다. 예전에 감사하는 입장에서 내가 했던 질문들에 대해서도 반성을 하게 된다. 현재 국정감사는 언론을 의식한 과장된 연출이 많다. 비난과 호통의 강도를 높일수록 언론의 주목을 끈다고 생각한다. 피감기관 직원들도 국민인데 마치 야단치듯이 위압적인 자세로 감사를 진행해서는 곤란하다. 감사자와 피감기관이 둥근 테이블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구조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해보는 민주적이고 건설적인 국정감사를 제안해본다."

- 국감에서 낙하산 논란이 있었지만 정면 돌파에 성공했다. 공기업 임원의 임기 중 교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내가 전문성이 없다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 시인했다. 구구하게 변명을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호감을 주었던 것 같다. 전문성에서 오는 오류와 편협된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백지상태에서 새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측면도 있지 않는가. 마사회장 임명 직후 한나라당을 탈당해 정치적 중립성을 견지했던 것도 적절했다. 임기동안 당당히 일하고 합당한 평가를 받겠다. 단기성과보다 멀리보고 천천히 한계단씩 오르겠다. 과거에 정치적인 이유로 마사회 임원들이 임기를 못 채우고 교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임원의 성과에 따라 연임 여부가 결정된다."

- 경마 이익의 사회 환원이 만족스럽지 못해 보이는데 이에 대한 개선책은.

"현재 매출의 20% 정도가 세금으로 나가고 있다. 72%는 고객환급금이고, 5%가 운영비, 3%만 축산발전과 농어촌복지에 쓰인다. 현재 마권 원천세율(18%)이 과도하게 높아서 사회 환원에 한계가 있다. 정부와 협의를 거쳐 원천세율을 낮춰 여기서 마련된 재원으로 공격적인 자선사업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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