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현(녹색소비자연대공동대표)

변화가 세계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 '변화'의 상징처럼 보인다. 미국인들이 그를 선택한 것은 그의 선거구호인 '변화(change)' 때문만은 아닐 것이고, 그것을 갈망한 때문일 것이다. 그런 데에는 미국에서 시작한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변화, 그것은 자연스러움이고, 고여 있으면 썩는 법. 그런 이치를 체계화한 것이 주역(周易)이요, 동양의 근본 사상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런 순리를 인정하고 받아드리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첫째가 권력을 맛본 사람들이다. 그 달콤한 맛을 놓치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북한 정권이고, 박정희 정권도 그러하였다. 아시아 각국의 혼돈도 민심의 흐름에 역행하는 정치지도자들 때문일 것이다.

둘째가 이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안경을 벗고 세상을 보아야 본질을 볼 수 있는데, 불교에서도 그렇게 하라고 누누이 가르친다. 우리 국민은 우에서 좌로 다시 좌에서 우로 정권교체를 이루어냈고, 그것은 세계사적으로 흔하지 않은 변혁으로 세계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부러워한다. 그런데 중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를 보면 이념에 빠진 정치인들이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고 역행하는 듯하다.

정권교체를 기대할 수 없던 암흑시대에나 볼 수 있는 싸움의 정치, 떼쓰는 정치형태를 아직도 연출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고,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구호를 외치면 안 될 일도 되는 소위 '떼법'이 통하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근본은 대화요 토론이며, 표결하고 승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본래 우리에게 낯설고 익숙하지 못한 문화인데, 우리의 가정·학교 ·사회 어디에서도 그걸 가르치고 배울 데가 없다. 그런 대화와 토론 정치의 모범을 우리 시의회가 보여 달라는 것이며, 민주주의의 교육장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마침 며칠 전 시의회 운영위원장이 앞으로 의회를 그런 방향으로 운영하겠다는 포부의 말을 듣고 희망이 보인다.

우선 공청회를 수시로 여는 정치를 보고 싶다. 미국 의회에서 사회문제가 있을 때마다 공청회가 열리는 것을 보면 부러워지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포항 녹색소비자연대가 시작한 수돗물불소화반대운동을 시의회가 주관한 공청회 한 번으로 끝낼 수 있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포항시 승격 60주년 기념으로 만들려는 포항 시사(市史) 문제도 공청회에서 다루어야 할 대표적인 경우이지만, 그 때문에 이 글을 쓰는 양 내 의도가 오해받을까봐 줄인다.

요즈음 유강, 양학동 일부 주민들이 들고 나온 중학교 배정 반대운동도, 현수막이 걷히지 않는 걸 보면 의회에서 공개적으로 듣고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면 어떨는지. 중앙초등학교를 옮기고 그 자리에 교육청을 옮기는 계획을 입안 추진했던 사람으로부터 경험을 잠시 들은 일이 있다. 성공했으면 포항시의 큰 숙제, 시청을 옮기고 생긴 육거리 부근의 공동화 문제가 해결됐을 터인데, 시의원들 중 도움은 커녕 걸림돌이 된 사람도 있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 때 시의회가 나설 수 없었을까?

이처럼 정당, 교육청, 경찰서 등에서 할 일이라도,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시끄러움이 계속될 경우 의회가 적극 나서는 것이다. 그것은 지역사회를 안정시키는 일도 되겠지만, 의회가 사랑을 받고 신뢰를 쌓는 일이며, 권위를 얻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권위의 중요성은 60년대 말 미국 사회가 아주 혼란스러울 때 그 원인을 사회의 각종 권위의 상실 때문이라고 진단한 미국 어느 철학자의 글을 읽었다. 세월이 갈수록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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