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영(시인)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다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연설 원고가 탄생 200주년 기념일인 2월 12일 뉴욕 크리시티 경매장에서 경매에 오른다고 한다. 1864년 11월 남북전쟁 중에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 제16대 대통령으로 재선되었다.

연설 원고는 분열된 미국인의 단결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자는 내용으로 링컨 대통령이 직접 썼다고 한다. 자필 원고의 가치도 높아 경매에서 300만 달러(42억원)는 충분할 것이라 한다.

반면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연설은 27세의 젊은 연설 작가인 존 파브로가 작성했다고 한다.

존 파브로는 미국의 건국정신 회복에 초점을 맞추어 희망과 용기를 내세웠는데 그 원고를 스타벅스 매장 구석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컴퓨터로 작성했다고 한다.

대통령에 당선한 오바마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작성한 원고지만 그 내용은 미국 역사의 한 분기점인 링컨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담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나라는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힌두교는 물론 무신론자들의 국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구상 곳곳에서 온 다양한 언어와 문화로 구성된 국가입니다. 우리는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의 아픔과 분리의 아픔 그리고 어두운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강력해졌고, 단결해 왔습니다.'

이 내용에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실을 대입해 보면 우리 역시 비슷하다. 과거와 달리 우리 국민은 다양한 종교, 다문화, 거기에 6.25라는 아픈 상처를 극복하면서 국민소득 2만 달라에 이르는 나라로 발전시켰다.

발전에는 으레 과학이라는 분야가 최일선에 등장한다. 두 원고 사이에도 과학의 놀라운 발전을 발견하게 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자필 원고에서 컴퓨터 원고로의 발전일 것이다.

컴퓨터란 도구를 상상에서나 가능했던 19세기엔 모든 기록을 펜으로 썼다. 반면에 오늘 다른 사람과의 의사 교환에 사용되는 것은 펜글씨가 아니라 컴퓨터 글씨다. 한통의 문서도, 편지도 컴퓨터로 작성하고 컴퓨터로(메일) 보낸다.

사실 과학의 발전은 인간을 편리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통시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링컨 대통령이 살던 시대와 지금의 시대를 과학으로 비교하자면 현대인은 몽땅 행복해야만 한다. 그런데 많은 현대인들이 그렇다고 공감하는데 망설일 것이다.

과학의 발달에 따른 비인간화로 발생하는 많은 문제를 우린 곳곳에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특히 물신주의의 매몰찬 찬바람과 맞물린 과학의 발전은 우리 사회 구성원 간을 사막화 하는데 앞장서게 한다.

인간 존재의 뿌리를 다루는, 과학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은 시인 작가들도 과학의 도구라 할 컴퓨터에 푹 젖어있다. 10여 년 전의 일이다. 늘 만년필로 글을 쓰는 선배 소설가에게 컴퓨터를 이용하는 후배 소설가가 말했다.

"선배님, 만년필로 쓰는 것이 걷는 일이라면 컴퓨터로 글을 쓰는 일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퇴고에 퇴고로 파지를 몇 십장씩 버려야하는 작가에게 컴퓨터는 구세주 같은 과학의 도구였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대부분의 시인 작가들도 컴퓨터로 글을 쓰고, 메일을 통해 글을 보낸다. 그래서 그런지 청탁자의 얼굴도 모른다. 원고료도 무통장 입금이다. 인간적 체취를 느낄 수 없는 디지털 통로다.

현시대를 관통한 시인 작가들의 자필 원고를 먼 후일에는 쉽게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링컨의 자필원고 경매란 소식을 들으며 인간적 체취가 담긴 자필원고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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